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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잔키우스
약력
 
  이름 제롬 잔키우스
직함 -
내용
제롬 잔키우스(Girolamo Zanchi or Hieronymus Zanchius, 1516-1590)

이탈리아 알라자노에서 태어난 제롬 잔키우스는 “가장 위대한 개신교 철학자”라 불리는 인물로서, 그의 비문에는 “비록 그가 영으로는 떠났으나, 그 이름은 죽지 않고 있다.”라고 적혀 있다. 일반적으로 그의 부모는 그가 어거스티니안 교단 계통의 의전 수도회의 수도원에 들어간 때인 14세 무렵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잔키우스는 이탈리아 최고의 종교개혁자인 피터 마터 버미글리(Peter Martyr Vermigli, 1499-1562)에게서 사사를 받아 종교개혁에 대한 사상을 공유하게 되었으며, 일찍이 1551년에 이탈리아를 떠나 스트라스부르그(Strasbourg)의 성 토마스(St. Thomas) 대학에서 구약 교수직을 맡았다. 나중에 1553년에 이르러서는 그의 스승 피터 마터 버미글리가 그 대학에 합류했으나, 같은 해에 버미글리는 다시 쮜리히로 떠나게 되었으며, 그가 떠난 후에 잔키우스는 토마스 대학에 계속 남아서 교수직을 감당했다. 그리고 1561년에는 그에 대한 일련의 고소들이 요한 마르바흐(Johann Marbach. 1521-1581)에 의해 무죄로 판명되기도 했다. 이후로 1563년에 그는 토마스 대학을 떠나서 치아벤나시(chiavennaschi)의 그리슨(Grisons)에 있는 이탈리안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목회자로 봉직했다. 이후로 1568년에 그는 하이델베르그(Heidelberg) 대학에서 신학교수직을 맡기도 했는데, 주로 이 시기에 그의 수많은 작품들이 발표됐다. 하지만 나중에 루드비히 6세(Ludwig Ⅵ)의 즉위로 루터주의 군주가 하이델베르그에 들어오게 되자 그는 노이슈타트(Wiener Neustadt)로 떠나야만 했었는데, 이후로 노이슈타트에서 목회를 계속하다가 1590년에 임종을 맞았다. 잔키우스는 『영적 결혼』(the spiritual marriage)에서 창세기 2장의 결혼의 제정에서 시작하여 에베소서 5장의 은유를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적인 연합의 관계를 결혼관계로 설명하여, 당시의 루터교회 교리에 반대하는 논증을 전개한다. 즉 루터파가 그리스도의 몸을 우리와 전적으로 공유할 수 없이 다름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에베소서 5장을 바탕으로 결혼의 은유로서 신자들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신부와 남편의 관계로서 연합됨을 진술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예정론과 관련하여 루터파 신학자 마르바흐(Marbach)가 잔키우스를 정통의 길에 서지 않은 자로 스트라스부르의 시의회에 고소했던 배경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은 배경 가운데 있는 것이라 하겠다. 즉 루터파의 신학과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