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신청
바이블칼리지
단체구매성경 추천 기획전
예꿈
두란노 기프트 카드
공과
도서정가제 소득공제 해외배송가능

성경의 시대착오적인 폭력들

기독교인들의 폭력성과 야만성, 몰상식의 원천인 성경의 우상화에 대한 예언자적 비판

저자 : 존 쉘비 스퐁  | 한국기독교연구소 | 2017-10-30 출간

별점 5개    이 책의 리뷰 [0] 리뷰쓰기 문의하기

정가 9,700원
판매가 8,730원 (10% 할인)
적립금 0원 (0%) 적립

배송료 9,000원 미만 2,000원
배송방법 두란노몰 배송

출고예정일

3일이내 준비가능 (토,일,공휴일제외, 입금일기준)

해외배송 가능
수량
총 수량: 1 총 상품 금액 8,730

도서정보

ISBN 9788997339334
쪽수 414
크기 154*223

이 책이 속한 분야


기독교인들의 폭력성과 야만성, 몰상식의 원천인 성경의 우상화에 대한 예언자적 비판


이 책에서 그는 성경이 인간 이외의 다른 피조물들, 여성과 어린이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동성애자들과 타종교인들에 대한 독선과 적개심, 폭력과 저주를 불러일으키는 잔인한 본문들이 결코 절대 불변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시대적인 위협 앞에서 유대인들이 만들어낸 결함 많은 인간적인 대응이기 때문에, 이런 역사적 상황과 가부장적이며 이성애주의적인 문화적 조건들과 제약들을 망각한 채 문자적으로 불변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을 때, 이런 시대착오적인 본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왜곡시켰는지를 밝히고, 성경의 편집 과정 배후에 있는 보편적 의식과 영성의 발전, 특히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드러난 획기적인 의식 혁명을 밝힌다. 이 책은 탈종교 시대에 하나님은 무엇이며, 근본주의자들에 의한 종교적 폭력이 횡행하는 시대에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해명한다. 이 책이 묻는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사랑과 용서의 십자가에서 출발한 기독교는 왜 가장 폭력적인 종교가 되었는가? 성경은 십자군전쟁, 마녀사냥, 노예제도, 유대인 학살에서 어떻게 이용되었는가? 오늘날에도 성경은 여성 억압, 동성애 혐오, 환경 파괴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가? 성경 안에는 왜 독선과 편견, 증오와 폭력을 조장하는 구절들이 그토록 많은가? 예수를 배신했다는 유다는 왜 유대인들의 조상 유다와 똑같은 이름이 되었는가? “나를 거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는 말씀은 본래 무슨 뜻인가? 유대 민족의 특수한 서사시가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둔갑했는가? 근본주의자들은 무력감, 불안, 절망감을 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분노와 폭력으로 표출하는가? 예수는 어떻게 새로운 인간성, 즉 영적 인간(Homo Spiritus)의 첫 열매가 되었는가? 탈종교 시대에 하나님은 무엇이며, 종교적 폭력이 부흥하는 시대에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루터의 교회개혁 500주년이지만, 개신교회가 가톨릭교회보다 나은 점이 과연 무엇인가? 루터가 역설했던 것처럼 개신교인들이 가톨릭 신자들보다 더욱 주체적인 신앙을 갖고 있으며 기성체제에 대한 저항정신이 더욱 투철한가? 성경말씀을 더욱 열심히 연구하며, 하나님의 보편적 은총에 대한 확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더욱 넘치는가?


그러나 한국 개신교회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최근 역사에서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가 적폐세력으로 몰리자, 이번에는 동성애 반대, 인권조례 반대, 여성목사 안수 반대, 심지어 재혼 반대까지 외침으로써 탈레반처럼 분노에 가득 찬 폭력적 원리주의 집단임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개신교의 대다수 목사들은 도대체 왜 천부적 인권을 완전히 무시하며, 또한 예수의 사랑과 용서의 복음을 배반하고 차별과 혐오에 앞장서는 폭력적 원리주의자들이 되었는가?
그 근본 이유 중 하나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호하기에 급급한 교회 지도자들에 대해 충분히 비판하고 저항할 수 있을 정도로 평신도들이 성경을 연구하지 않음으로써 개신교 원리들 가운데 하나인 “오직 성경으로만”과 “만인사제론”을폐기처분할 지경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처럼 폭력과 차별과 혐오의 기독교를 평화와 정의, 생명과 나눔의 기독교로 바꾸는 과제만큼 절박한 과제가 없다. 특히 미국과 영국의 안보전문가들이 예상하듯이 앞으로 20여 년 뒤부터  북반구 대도시들에서 식량폭동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할 때, 탈레반과 같은 원리주의에 젖은 개신교 목사들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부추기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막아야 할 책임이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책 속으로


그 해 크리스마스의 흥분이 가신 뒤에 나는 소중한 성경책을 침대 옆 책상 위에 두고 그 날 밤부터 날마다 성경 읽기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지속해 오고 있다. 지금 계산해 보니 약 60년쯤 되었다. 그 날 크리스마스 이후 내가 의도적이든 아니든 성경을 읽거나 연구하지 않은 날은 거의 없다. 아마도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대략 스무 번 내지 스물다섯 번 정도 읽은 것 같다. 사복음서, 사도행전, 창세기는 훨씬 더 많이 읽었다. 내가 성경을 너무나 사랑했고 또 꼼꼼하게 읽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하는 하나님이나 종교와는 어울리지 않는 잔혹한 구절들도 놓치지 않았다. 나는 성경책 여기저기에서 혼란스럽고 혐오스러우며 불쾌한 부분들을 마주치게 되었는데, 이것이 성경의 어두운 부분을 내가 처음으로 의식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스물네 살에 성공회 신부로 서품되었고 마흔 네 살에 주교로 선출되었다. 나는 신부 서품은 선생님의 역할로, 교회는 교육센터로 간주하고 신부로서의 직책을 신학교 교수 개념으로 수행한 사람이다. 내가 수십 년 간 주일마다 회중에게 가르친 책이 성경이다. 교구센터에서는 남부 지방과 전국에서 최초로 성경에 대한 회의를 인도하기도 했으며, 교구에서는 성인반 성경공부를 창설하여 주일예배 전에 한 시간씩 가르쳤다. 주일날 성경공부에서 가르친 내용은 거의 신학대학 수준의 것이었으며, 나는 우리 교구 신도들이 내가 배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그 성경공부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해 다른 무엇보다도 더 철저히 준비를 했다. 만약 나의 교구 신도들이 내가 제공하는 샘으로부터 물을 마시기 싫다면 그들은 주변의 다른 교회를 선택하면 되었다. 나는 학생들의 종교적 수준에 맞춰 진리를 둘러막음으로써 강의를 손질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목표는 그들이 학자적 통찰력에 도전하도록 하고 시대에 맞는 성경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나는 성경의 어느 부분이 편견을 뒷받침하고 폭력을 은폐시키는 데 사용됐는지 알고 있다. 또한 나는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의 종교적 상징의 부정적 측면을 보지 못하는 희한한 능력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 세상의 인간적 갈등에는 항상 종교적 요인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은 웬만한 분들이면 다 아는 이야기다. 점차로 나는 내가 신부와 주교로서 교회가 진정으로 교회답기를 요구하며 참여한 모든 투쟁이 궁극적으로는 성경이 역사를 통해 사용되어 온 방식에 대한 투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경건하고 헌신적인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핍박하거나, 종교적으로 힘있는 사람들이 남에게 가하는 억압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한 것이 바로 성경이었다. 성경을 가장 자주 인용하는 사람들이 지극히 당연한 정의의 문제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성경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성경이 사용되는 방법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방어적일 뿐 정직한 답이 아니었다. 나는 성경 자체가 적(敵)이라고 느껴지는 부분들을 만나게 되었으며, 반복적으로 성경이 자신의 말로 성경 자체를 저주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 후에도 미국의 유명한 TV 부흥목사들은 유대인과 이슬람교도, 그리고 그들의 주요 희생양인 동성애자들에 대해 또 다른 형태의 종교적 독선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성경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따금 성경은 분명히 악하며, 그 내용은 가공스럽다. 이런 성찰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이것은 성경을 자기 파괴성에서 구출하고, 교회로 하여금 그 동안 “성경”의 인용을 통해 정당화시켜 왔던 자신의 소름끼치는 역사를 직시하도록 만드는 개혁운동으로 연결되었다.

오사마 빈 라덴이 2001년에 비행기 납치와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에 대한 자폭을 지시하면서 신(神)을 거론하지 않았던가?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사람들에게 폭탄과 미사일을 퍼부으면서 거론한 것도 역시 하나님 아니었던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허리에 다이너마이트 띠를 두르고 이스라엘의 만원 버스나 대중식당에서 자폭하면서 외친 것도 역시 다름 아닌 하나님이었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이 웨스트 뱅크나 가자 지구에 탱크를 보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행한 테러에 대해 정당하고 적절한 복수를 한다는 미명 아래 적의 은신처라고 생각되는 집들을 파괴해 버릴 때도 하나님의 이름을 빌렸다.
아일랜드에서는 가톨릭과 개신교도들이 30년 간 지속된 종교전쟁에서 하나님 이름으로 서로를 죽였으며, 1588년에는 스페인 무적함대가 바티칸을 위해 개신교 국가인 영국을 치려다 전멸하기도 했다.
종교적 해악은 매우 민감한 부분을 주시해 보면 더욱 복잡하고 파괴적으로 나타난다. 즉 오늘날 신부들이, 보호해 주기를 바라며 그들에게 맡겨진 어린아이들을 학대하거나 폭행할 때에도 예의 하나님을 들먹인다. 교회는 신도들에게 신부들을 영적인 아버지로서 존경하라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이런 폭거는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일 뿐만 아니라 신뢰에 대한 배신이기도 하다. 이런 현상은 더욱 악화되어 신분이 높은 주교, 대주교, 추기경들도 피해자보다는 폭력적 범죄와 그 가해자들, 나아가서는 그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역시 하나님을 동원했다.
교황과 캔터베리 대주교를 포함한 세계적 종교 지도자들은 동성애자들이 그렇게 태어난 “죄”(sin)로 인해 지속적으로 핍박받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독교인들의 동성애자 혐오를 정당화시켜 주면서 또한 하나님을 거론한다. 두 사람 모두 진리보다는 교회의 일체성을 더 중시한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별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면, 성경이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전통적 주장은 잘해야 문제투성이고, 못하면 우스개소리 밖에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교회에서의 예배의식도 어느 정도까지는 성경에 대한 이런 주장에 의존하여 왔기 때문에, 이런 주장이 잘못됐다는 자각이 드는 순간 예배의식 자체도 무너질 수 있다. 따라서 성경의 권위와 그 문자적인 역사성을 전제하고 이에 계속 근거한다면 기독교의 앞날은 별로 밝지 않다. 성경에 대한 이런 분명한 진실을 복음주의 개신교나 보수 가톨릭 같은 우익 교회(right- wing churches)가 신경질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정말로 희망이 없음을 보여 준다. 이런 교회에 권위와 확신을 갈망하는 수천 명의 신자들이 모여드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런 현상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제대로 다루지 못한 교회의 내부적 질병의 또 다른 증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기독교 학자들에 대한 우익 교회의 지속적인 공격은 그들이 현실을 인정하기 싫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현상이다. 사람들이 누군가의 메시지를 감당할 수 없게 되면, 고전적이고 아직도 널리 쓰이는 방법으로 그 메시지를 전달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유대인의 부족 이야기로 시작된 이 성경 서사시는 한때 인간을 차별하던 경계선 앞에서 거듭 정지하곤 했다. 궁극적으로 그 경계선은 하나의 인간 공동체가 가시화되기까지 걸림돌이 되었고, 하나님의 무제한적 사랑은 성과 인종, 성적 성향과 종교 등 경계선을 긋는 성향으로 인해 농락당했다. 그렇다. 우리는 아직도 인간 사회에서 부족, 인종, 성 및 종교의 장벽들을 본다. 세계 평화에 역행하는 살인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수도 없이 많다. 더러는 기독교인들이고 더러는 유대인들이며 더러는 무슬림들이고 더러는 힌두교인들이고 불교인들이다. 그들은 모두 역사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우상 곧 부족신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 부족신 숭배가 역사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을 악한 것이라고 오해하지 말라. 비록 그런 부족신 숭배가 사라지는 데 따라 공포가 생겨나며, 증오심과 살해가 늘어난다 할지라도 말이다. 새로운 인간성에 대한 비전은 아직도 등장하고 있는 중이며, 그것은 부정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누가는 예수로 하여금 병이 치유될 때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10:9)고 선포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는 말하기를, 하나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있다. 즉 그것은 우리들 각자 안에 있다고 했다(17:21).
이 때문에 예수가 하나님 경험(a God experience)이다. 이 때문에 예수는 죽음이나 무덤이 삼킬 수 없는 생명이라고 선포되었고, 또한 종교의 형태를 포함하여 과거의 모든 형태 밖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한 생명이라고 선포된 것이다. 이 때문에 예수의 이야기가 유대 서사시에 접목되었고, 그 서사시가 민족사에서부터 인류의 보편적 이야기로 전환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영적 인간(Homo spiritus)으로 진화하고 있다. 하나의 새로운 인간성이 등장하고 있다. 예수는 그 새로운 인간성의 첫 열매인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이야기를 전해 주는 성경은 그가 누구이고 또한 그가 무슨 일과 무슨 말을 했는지에 대해 진실하고(시공에 묶인 이야기가 할 수 없는), 보편적 이야기로 변형되어야만 한다. 이 때문에 성경은 결코 또 다시 어떤 사람의 인간성을 모독하고 손상시키고 억압하고 노예화하고 또는 폄하하는 데 이용될 수 없다. 이 때문에 교회는 더 이상 권력과 권위, 그리고 (가장 잠복되어 있는 유혹인) 내적인 일치를 추구하는 것을 중단해야 하고, 그 대신 이 세계를 변혁하고 우리의 차이점들을 조화시키며, 장벽 없는 인간성을 선포하기 시작해야만 한다. 우리가 하잘 것 없는 분열들, 지나친 주장들 및 권력의 상징들을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의 대리인으로 행동하고 우리의 모든 에너지를 다른 종류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전적으로 바칠 의지가 없는 한, 우리는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라는 예수의 기도문으로 기도드릴 자격이 없는 것이다.



서문 __ 9


제1장  하나님의 말씀
 1절  하필이면 왜 이 책, 이 주제, 이 저자인가? __ 21
 2절  견딜 수 없는 주장 __ 37


제2장  성경과 환경
 3절  지나친 다산(多産)의 윤리 __ 55
 4절  산아제한의 가치 __ 69
 5절  지구의 반격 __ 79
 6절  불량 신학이 낳은 불량 생태학 __ 91


제3장  성경과 여성
 7절  창조 __ 105
 8절  기독교 역사 속의 성차별주의 __ 117
 9절  여성은 죄악의 근원 __ 127
10절  월경과 피에 대한 남성의 공포 __ 135
11절  부정적 입장의 재평가 __ 143


제4장  성경과 동성애
12절  동성애에 대한 교회의 투쟁 __ 157
13절  레위기의 성결법전 __ 167
14절  소돔 이야기 __ 175
15절  바울의 동성애 혐오증 __ 185


제5장  성경과 어린이
16절  “매를 아끼지 말라”는 호소 __ 197
17절  폭력은 항상 난폭하다 __ 205
18절  재판장 하나님 __ 217
19절  아동학대자 하나님 __ 225
20절  모욕적 하나님에서 생명의 하나님으로 __ 233


제6장  성경과 반(反)유대주의
21절  기독교 반유대주의의 기원 __ 245
22절  복음서의 반유대주의 __ 259
23절  반유대주의와 가롯 유다의 역할 __ 269
24절  유다가 예수 이야기에 개입된 상황 __ 277


제7장  성경과 확실성
25절  증상 __ 287
26절  교회 신조의 발전 __ 295
27절  “나를 거치지 않고는” __ 311
28절  종교간 미래의 비전 __ 321


제8장  성경을 서사시적 역사(Epic History)로 읽기
29절  히브리 성경의 형성 __ 333
30절  서사시의 한계를 넘어서 __ 359
31절  예수와 유대 서사시 __ 373
32절  종교를 넘어선 예수 __ 385


참고문헌 __ 405



“이 책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신앙의 신화를 넘어서서, 문제의 핵심을 바라보도록 도전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이단일 것이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계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만들 것이다. 스퐁 주교가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 Bill O'Reilly, 폭스 뉴스 앵커맨


“이 책을 통해 스퐁 주교는 또 다시 그의 예언자적 소명을 입증하여, 거짓이 아니라 진리를, 위선이 아니라 정직성과 명료함을, 병든 종교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상식을 선택한다. 그의 용기, 솔직함과 열정과 박식함은 오늘날과 같이 인간과 지구의 역사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시대에 기독교 안과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귀중한 선물이다.”
- Matthew Fox, 창조영성대학교 총장, 󰡔원복󰡕의 저자


“이 책에서 스퐁 주교는 성경을 근본주의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또 한 번의 탁월한 장을 썼다. 이 구출작전은 피조물, 여성, 어린이, 성적 소수자, 이방인들에 대한 가부장적이며 부족적인 성경의 태도를 넘어서서, 사랑의 하나님의 모든 것을 끌어안는 나라를 바라본다.”
- Robert Funk, 예수 세미나 설립자, 󰡔예수에게 솔직히󰡕의 저자


“스퐁 주교는 그의 독창성과 박식함, 글솜씨를 독특하게 섞어서 성경의 영적이며 윤리적인 권위를 탁월하게 설명해 주는데,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독특한 선물 곧 생각하는 능력에서는 조금도 타협하지 않는다.”
- Jack D. Spiro, 버지니아 주립대학교 유대 문화과 석좌교수



이 상품과 관련 셋트

관련 정보가 없습니다.

존 쉘비 스퐁 소개

미국 감독교회(성공회)의 뉴왁 교구 감독으로 24년 간 봉직하고 2000년에 은퇴하였다. 그는 이 책을 위시해서 19권의 중요한 책을 저술하였으며 백 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미국교회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로 알려졌는데, 그 이유는 그가 흑인, 여자, 동성연애자들을 교회생활에 완전히 참여시키는 운동의 선봉에 서왔기 때문만이 아니라 "머리가 거부하는 것은 결코 가슴이 예배할 수 없다" 는 확신으로 철저하게 정직한 신앙을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이 책에서 성경에 대한 문자주의적 해석이 어떻게 노예제도를 정당화시키고, 여성을 억압하고, 전쟁과 복수를 정당화시켰는지를 보여줄 뿐 아니라, 최근의 성서 신학과 현대 과학을 결합시키고 성경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문자주의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성경이 오늘날 여전히 살아 있는 "하느님의 말씀"임을 입증한다.


존 쉘비 스퐁 최근작

전체선택 장바구니담기

두란노몰 배송상품 두란노몰에서 재고를 보유하고 있는 도서,음반,세미나 테이프와 일부 교회용품입니다.
두란노몰에서 지정한 택배회사를 통해 고객님께 배송됩니다.
배송료는 3만원 미만일 경우 2,000원, 3만원 이상일 경우 무료배송입니다.
배송에 대한 불편 사항이 발생할 경우 전화바랍니다.(02-2078-5776~7)
거래처배송상품 장바구니에 거래처 배송상품으로 분류 됩니다.
두란노몰 배송상품과는 별도로 배송 됩니다.
두란노몰과 협력하는 거래처에서 직접 배송해드리며, 거래처 또는 고객이 배송비를 부담합니다.
(거래처별로 배송비가 상이하니 상품 상세정보를 꼭 확인해주세요.)
상품명 앞에 [착불]로 표기되어 있는 제품은 주문금액과 관계없이 무조건 배송비를 지불하셔야 합니다.
배송에 따른 불편사항이 발생할 경우 거래처와 협력하여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교환/반품/환불 고객님의 부주의로 인한 훼손 및 상품가치상실 등의 경우 교환, 환불이 불가능합니다.
유료로 반송할 경우 발송요금과 다르며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상품에 따라 교환, 반품이 안 되는 상품이 있을 수 있으니 해당하는 상품의 상세정보를 참고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