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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선교사 웨슬리 웬트워스

웨슬리와 친구들이 들려주는 소명, 학문, 교육 이야기

저자 : 손봉호   | IVP | 2015-09-18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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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ISBN 9788932814216
쪽수 292
크기 147*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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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한국 땅에서 한평생 문서 운동의 씨앗을 뿌린
웨슬리 웬트워스, 그 조용한 기적의 삶을 만나다!

그는 눈에 보이는 사업을 일으킨 리더는 아니었지만, 조용히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가 만나며 은혜를 베풀고 진리로 도전했다.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요 12:24) 어떤 기적이 일어나는지를 보게 되었다. 그를 통해 수많은 열매가 맺히고 새가 깃들 수 있는 수풀이 생겨난 것이다.

이 책은 두 가지 목적을 위해 기획되었다. 하나는 웨슬리 선교사의 팔순과 한국 선교 50년을 기리며 그에게 특별한 감사를 표현하고자 함이요, 다른 하나는 그의 일생의 비전과 유산을 간직하고 계승하고자 함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기고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주문을 했다. 먼저 웨슬리 선교사와의 만남을 회고하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웨슬리 선교사의 삶은 우리와 같이 그의 은혜를 입은 수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녹아 있기에 그 기억을 듣고 싶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 주신 그의 삶을 더 온전히 기억하고 싶었다.

다른 하나는 그의 도전과 관련해 기고자들 자신이 걸어온 삶의 여정을 들려 달라는 것이었다. 기고자가 자신의 분야에서 기독교적 학문이나 교육을 하기 위해 어떤 추구를 했으며, 무엇을 배웠는지 물었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체득한 지혜와 도움이 되는 요긴한 자료들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따라서 이 책에서 가장 먼저 혜택을 누릴 독자는 기독교적 학문을 추구하는 학생과 학자들, 그리고 교사들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그에게 받은 유산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문서 운동과 기독 지성 운동의 비전을 펼치는 도구가 될 책!

이 책의 1부는 한국 땅에서 50년간 평신도 선교사로 사역한 웨슬리 웬트워스의 일생과 사역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독자들은, 평생 자신의 이름으로 땅 한 평, 방 한 칸도 없이 살았지만, 한국 교회의 문서 운동, 기독 지성 운동, 기독교 학교교육 운동에 충만한 영감을 불어넣었던 한 인물을, 그리고 그의 일생을 통해 50년간 조용한 기적을 일으키신 하나님의 스토리를 만나게 된다.

2부와 3부는 웨슬리 선교사가 평생 관심을 기울여 온 문서 운동, 신앙과 학문, 기독교 교육의 주제를 따라서 그를 만났던 15명의 학자와 교육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저자들은 웨슬리 선교사의 일생의 사역을 계승하고 확장해야 한다는 대의에 공감하며 기쁜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이 웨슬리 선교사를 개인적으로 만난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걸어온 신앙과 학문 통합의 길, 기독교 교육 운동의 길, 직업 현장의 소명 발견하고자 추구해 온 길에 대해 회고하고 그 길에서 얻은 지혜와 통찰을 후배들에게 나누어 준다. 자연스럽게, 이 책은 1980년대 이후 한국 기독교의 중요한 한 흐름이었던 기독교 세계관 운동, 복음주의 기독 지성운동, 기독교 학교교육 운동이 형성되고 성장하는 과정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되었다.

“당신의 도서 목록은 무엇인가요?” 웨슬리 선교사가 평소에 친구들에게 종종 던지는 질문이다. 저자들은 웨슬리 선교사의 이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서 각 장을 쓰려고 노력했다. 그리하여 모든 글들은 단순한 개인적 회고를 넘어서 ‘도서 목록’을 제시하는 글이 되었다. 저자들은 신앙과 학문 통합의 여정에서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중요한 책들과,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후배들에게 추천하고자 하는 책들을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앙과 학문의 통합에 대해 고민하는 학생이나 기독교적 교육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려는 교육자들은 각 글들을 통해 어떤 자료들이 그 분야에서 고전적인 것이며 중요한 것인지 안내받을 수 있다.

웨슬리 선교사가 평생 추구해 온 문서 운동은 친구들에게 글을 소개함으로써 그들을 섬기는 사역이었다. 그리고 이 책의 독자들도 이 놀라운 사역에 동참하라는 부드러운 초대를 받는다. 이 책의 각 장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각각 철학, 문화, 경제학, 교육학, 과학, 경영학, 법학, 신학, 공학, 문학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 생각해 보도록 자극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열심 있는 신앙을 지니고 있지만 한 번도 자신의 공부나 가르침이 신앙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문서 운동가가 되어 그들에게 이 글들을 소개하라. 당신의 작은 수고에 의해 한 글이 그들의 손에 들려진다면, 그 다음 부터는 글이 스스로 일할 것이다. 그들의 정신과 영혼을 일깨우며 그들의 공부와 가르침에 신선한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이 책은 웨슬리 선교사의 비전을 펼치고 확장하는 산 도구가 될 것이다. 평생 책을 소개해 오고 사람들을 연결하며 성령의 도구가 되어 온 웨슬리 선교사처럼, 이 책도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을 소개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성령의 도구가 될 것이다.

■ 책 속으로

가장 따뜻한 기억은 2000년대 초반에 웨슬리와 당시 기학연 실행위원장 김승욱 교수와 간사 두 분을 집으로 초대하여 조촐한 ‘잔치’를 벌였던 기억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가난했지만 마음은 더 부유했던 것 같다. 웨슬리가 한국의 기독교 학문 발전을 위해 하고 있는 일이 참 고마웠다. 그와 간간히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일편단심을 느꼈다. 그의 영성은 정말 전형적인 미국의 개혁주의 영성 같다. 그는 늘 조용히 기도하고 일관되게 생각하고 일했다. 비록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처럼 뜨겁진 않았지만 항상 변함이 없었다. 독신 생활을 하지만 수도원주의나 신비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그에겐 항상 주님께 순종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그는 타국에서 근검절약하면서 자신의 사생활을 희생하는 삶을 살아 왔다. 그가 IVP 출판사 사무실의 작은 방에서 사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루터의 십자가 신학에 따르면, 한 신자의 경건성은 그가 주님을 위해 받는 고난에 비례한다. 그렇게 본다면 그는 누구보다 경건한 사람일 것이다. 나는 그에게서 자기를 절제하면서 삶 전체로 주를 섬기는 경건성을 보았다. (p. 84, 최태연)

웨슬리에 관한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으나 몇 가지만 소개하려고 한다. 토론토 기독교학문연구소(Institute for Christian Studies, 이하 ICS)에 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웨슬리는 1987년도 코스타를 중심으로 전 북미 지역에 있는 유학생들 가운데 기독교 학문에 관심을 가진 이들을 네트워킹한다는 야심 찬 기획을 가지고 직접 ‘심방’해 격려하고 또 그들의 친구들을 만나 도전하는 일을 하는 중이었다. 10년이 넘어 주행계가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를 소형 도요타 자동차에 책과 자료를 가득 싣고 말이다. 그가 나를 방문했는데 방이 하나밖에 없는 비좁은 아파트에서 일주일 이상 함께 지내야 했다. 마침 우리 부부는 첫 아기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웨슬리는 자신은 욕조에서도 잘 수 있다고 했다. 정말 그렇게도 할 분인 줄 알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어서 아기와 함께 침실에서 주무시게 하고 아내와 나는 밖에서 자기로 했다. 덕분에 늙은 총각이 한밤중에 일어나 칭얼대는 아기를 달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렇게 일주일을 복닥거리다 웨슬리가 떠나는 날이었다. 국경 너머 뉴욕 주 버팔로에 있는 친구에게 숙박을 부탁해 놓고, 아내가 준비한 점심 샌드위치를 건네 드리고 작별 인사를 했다. 차가 유턴을 해 건너편으로 지나가는 걸 지켜보는데 마음이 울컥했다. 아! 이분이 바로 우리 시대의 ‘사도 바울’이구나. 바울을 떠나보내는 제자들과 성도들의 심정이 이랬겠구나 싶었다. 벌써 30년도 훨씬 넘은 일인데 바로 어제 일같이 생생하다. 예상한 대로 웨슬리는 중간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할 생각도 없이 곧바로 다음 ‘제자’를 향해 차를 몰았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데에만 닿아 있었다. (pp. 100-101, 신국원)

내가 결혼한 후 딸을 낳고 나서부터 웨슬리는 우리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는 날도 많아졌다. 심지어 대구에 있는 남편 본가에서 함께 자기도 했고, 그 특유의 열정으로 다른 교육학자나 문학 전공자를 데려와 네트워킹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늘 문학 혹은 교육학과 관련된 기독교 세계관 책을 소개해 주거나 가져다주기도 해서 도통 우리가 기독교 세계관의 중요성을 잊어버릴 수 없게 만들곤 했다.
  특히 집에서 만나는 날이면 우리에게 딸들을 교육하면서 어떻게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르치고 있는지, 아이들에 대한 우리의 비전은 기독교 세계관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물었다. 또한 큰딸 수현이에게도 웨슬리는 늘 도전적인 질문을 했다. 학교에서 생물을 배우면서 진화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그에 대한 기독
교적 접근은 어떠해야 하는지 등등의 질문이었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수현이에게 이러한 질문들을 한 적이 있냐고 점검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질문들은 늘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비가 오면 한 조각도 남김없이 온 땅이 촉촉하게 적셔지듯이 기독교 세계관이란 삶 전체에 골고루, 구석구석 스며들어야 하는 것임을 웨슬리는 우리에게 늘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p. 118, 최예정)

가장 최근에 웨슬리 선교사님을 뵌 것은 작년, 서울대 연구실에서였다. 여전히 캠퍼스 사역에 열심을 내시면서 나를 독려하는 음성으로 이런 책, 저런 잡지를 보았느냐고 물어보셨다. 이제 총론적인 책보다는 내가 하는 구체적인 연구에서 하나님의 뜻을 담는 일에 더 관심이 간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러고 보면 웨슬리는 도전하는 선생이다. 중요한 질문을 던져 그
질문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나도 지난 35년 동안 웨슬리 선교사님의 도전을 받고 그에 응전하며 산 셈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도전은 선교사님의 도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전이라는 것을. 우리의 모든 것에서 주되심을 인정하고 선포하며 살아야 함을 웨슬리 선교사님이 삶과 말씀으로 깨우쳐 주신 것을. (p. 132, 김병연)

과학과 신앙의 문제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선교사님은 대화의 마지막을 항상 실천적인 고민으로 끌고 가신다. 이런 특징은 선교사님과 대화를 나누어 본 사람이라면 영역을 불문하고 누구나 경험한 바일 것이다. 학자로서 신앙과 학문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을 만나면 고민의 유익한 부분을 신앙 공동체와 어떻게 나눌 것인지 어김없이 도전하셨다. 사실 이러한 관심은 날이 갈수록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경우 과학과 종교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나 자신의 신앙 문제와 결합된 학문적 호기심에서였다. 과학과 신앙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지금은, 이 문제로 고심하는 이들에게 할 수 있는 한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선교사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한다. 이 점에서 웨슬리 선교사님의 교훈적 삶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는 더 큰 무게로 다가온다. 선교사님은 팔순에도 여전히 열정과 애정을 가지고 문서 선교 사역을 감당하신다. 그런 선교사님에 비해 나 자신을 돌아볼 때, 나는 여전히 학문적 호기심의 충족, 약간의 성취감 그리고 생활의 방편에 머무르고 있지는 않은지 갈수록 마음이 불편해짐을 느낀다. (pp. 165-166, 박희주)

“필요 없어요.” 웨슬리와 함께했던 첫 번째 설 때였나 보다. 따뜻한 장갑이 필요할 것 같아 마련한 가죽 장갑을 한사코 마다하던 모습이 조금 야속했던 기억이 난다. “정성 들여 생각해서 준비한 선물인데….” 입고 다니는 옷이나 신이나 하나같이 낡았건만 “너무 많아요. 필요 없어요”란다. 칼국수 집에 가면 꼭 제일 싼 “그냥 칼국수”만 시킨다. “해산물은 싫어해요.” 좀 좋은 음식을 대접하려 해도 늘 사양한다. 일하시는 홍대 앞 IVP 근처에서 식사 대접이라도 하려고 모시고 나서면, 간단한 샌드위치가 가장 좋단다. 그것도 꼭 당일 할인 메뉴 중에서 고르신다. 웨슬리는 천국 식당에도 할인된 ‘오늘의 메뉴’가 있으면 그것만 먹을 사람이다.
  “이렇게 무거운 배낭을” 처음 웨슬리의 배낭을 받아 들며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나누어 주려고 복사해 들고 다니는 유인물과 책으로 늘 가득했던 웨슬리의 가방. “헤이 웨슬리, 이젠 인터넷 시대니 유인물은 복사해 들고 다니지 말아요.” 나무라듯 말해 보지만, 참 오래도록 그 버릇을 버리지 않으셨다. 요즘 웨슬리의 가방이 조금 가벼워진 것은 생각을 바꿔서가 아니다. 그의 노쇠한 무릎과 허리, 그리고 어깨 때문이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쪽은 이제 내가 되었다. (p. 185, 장수영)

웨슬리 선교사님은 자신을 미국에서 한국으로 파송된 엔지니어 선교사로 소개하지만 나에게 그분은 기독교 교육자이다. 사실 나는 웨슬리 선교사님이 엔지니어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늘 교육과 관련된 책을 등산 배낭에 잔뜩 가지고 다니면서 소개해 주셨다. 그렇다고 그분이 책을 판매하거나 보급하는 데 궁극적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늘 교육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었으며, 그런 관점을 갖게 하기 위해 책을 소개해 주셨던 것이다. 그는 마치 의사가 환자의 병을 진단해서 그에 맞는 치료를 하는 것처럼 만나는 사람이 그 전공 분야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무엇이 문제인지를 진단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책을 골라서 소개해 주었다. (p. 225, 박상진)

그분과의 만남에서 잊히지 않는 몇몇 장면들과 함께 나에게 강한 인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자신을 위해서는 철저히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신다는 점이다. 선교사님의 도움을 받고 해외를 다녀와서 드린 선물들 중에 로션이나 향수 같은 것은 쓰지 않는다고 그 자리에서 돌려주셨다. 보통 사람들은 일단 받고 다른 사람에게 주기도 하지만 그분은 그 자리에서 “나는 안 씁니다”라고 하시면서 돌려주시곤 했다. 한번은 부산 호산나교회에서 열린 리처드 에들린 박사의 호주 NICE(National Institute for Christian Education) 프로그램에 여러 날을 함께 참석한 적이 있다. 거기서 우리는 피곤을 달래기 위해 먹을 곳을 찾아다녔는데 선교사님은 점심을 거르고 잠을 청하겠다고 하시며 바나나 하나만 챙겨 가시던 것이 기억난다. 또 언젠가는 IVP 사무실에 갔는데 오래된 컴퓨터와 박스 위에 설치해 놓은 매트리스를 보고 정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선교사님이 편찮으셔서 수술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사무실에서 지내셨던 것 같다. 이렇게 자신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것만 소비하시는 모습과 허례허식을 깨는 매우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실 때는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pp. 245-246, 김정효)



■ 웨슬리 웬트워스 소개

웨슬리 웬트워스 Wesley J. Wentworth, Jr.

1935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노샘프턴에서 태어나 근처 시골 마을인 에머스트에서 농장 일, 물놀이, 사향쥐 사냥, 야구를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운동을 좋아하여 고등학교 시절에는 야구, 농구, 풋볼 3개 종목에서 학교 대표 선수로 활약했다. 버지니아 공대(Virginia Tech) 시절 IVF를 통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이후 소그룹 리더, 문서 담당자, 선교 담당자로 섬기며 문서 사역과 선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버지니아 공대에서 석사 학위를 마친 후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한국 원조 프로그램(서울시 하수처리시설 건설 등)에 자원하여 1965년 4월 한국에 왔다. 당시 한국에서 사역하던 간하배, 배사라, 오대원, 하도례 등 여러 선교사들과 교제하며 영어 서적을 한국에 소개하고 보급하는 일을 했다. 1960년대에는 광주기독병원 병동 건축에 전임 엔지니어로 참여했고, 1970년대에는 전주예수병원의 시설관리 책임자로 일하며 예수간호전문학교(현 예수대학교) 교사 신축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은퇴할 때까지 상하수처리 관련 엔지니어로 일했고(그의 한국식 이름 ‘원이삼’은 숫자 일, 이, 삼에서 온 것인데, 엔지니어에게는 숫자가 중요하므로 스스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과 교수, 교사를 만나며 그들이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학문과 교육을 실천하도록 도전했다. IVP창립 초기부터 고문으로 일하며 기독교 세계관 도서 등 IVP의 출간 내용에 대하여 자문하였다. 기독교학문연구회를 비롯하여 1980년대에 출발한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 한국창조과학회, KOSTA 운동 등을 배후에서 돕고 자문했다. 2000년대에는 기독교대안교육연맹, 기독교홈스쿨협회 등의 설립을 도왔다.

  그의 주소록에는 족히 수백 명이 넘는 기독 학자와 교사의 이름이 있으며, 지금도 그들에게 끊임없이 연락하며 사람을 소개하고 새로 나온 책과 자료를 전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그가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 수없이 많으므로 그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오늘날 한국 기독 지성의 이야기를 결코 쓸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의 기고자들은 그가 남긴 유산과 열매에 대한 산 증인들이다. 평생 독신으로, 엔지니어로, 평신도 선교사로 살아온 그의 일생은 문서 사역이, 그리고 한 사람을 끝까지 돕는 멘토링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를 보여 주는 이정표가 되었다.

추천 서문: 한국 기독 지식인들의 대부 _손봉호
들어가는 말: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_기획위원

1부 웨슬리 선교사의 삶과 사역
나의 인생, 나의 소명 _웨슬리 웬트워스

2부 기독교 세계관과 문서 운동
1. 웨슬리 선교사와 기독교 세계관 운동 _양승훈
2. 웨슬리 선교사와 문서 운동 _홍병룡

3부 기독교적 학문, 교육, 그리고 소명
1. 웨슬리와의 만남과 기독교 철학의 여정 _최태연
2. 사랑하고 존경하는 인생의 멘토, 웨슬리 _신국원
3. 문학, 하나님의 이야기 그림자 _최예정
4. 성경의 진리를 확인하는 경제학 _김병연
5. 한 경영학자가 만난 웨슬리 _배종석
6. 과학과 종교 그리고 창조와 진화 _박희주
7. 웨슬리 그리고 기독교적 공학 _장수영
8. 기독교 세계관과 생명윤리, 선교의료 _김민철
9. 웨슬리 할아버지와 기독 법학자의 길 _이국운
10. 웨슬리 선교사와 한국 기독교 교육 운동 _박상진
11. 제3의 기독교 학교 운동과 웨슬리 선교사 _김정효
12. 웨슬리 선교사와 나의 직장사역 _방선기

나가는 말: 나의 북맨 나의 뷰맨 _송인규
연보




그는 한국 기독 지식인들의 멘토요 대부라 할 수 있다. 어떻게 그는 한국의 복음주의 기독 지성계를 형성하는 데 그렇게 결정적인 공헌을 할 수 있었는가? 그의 설득력은 말이 아니라 그의 인품과 삶에 있다.
-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이사장

그동안 자신의 이름으로 된 땅 한 평, 방 한 칸도 없이 사신 선교사님의 삶은 한국 교회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 일을 위해 그는 인생을 바쳐 커다란 그물을 치셨고, 그 그물에 걸려든 많은 ‘물고기들’이 지금도 곳곳에서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리고 그 물고기들 중 하나가 바로 나다.
- 양승훈,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

웨슬리는 자신이 한 일을 자랑하거나 내세우는 법이 전혀 없다. 선교사라는 호칭조차 가지지 않은 평신도 텐트메이커이다. 그럼에도 한국 기독교를 위해 헌신한 그 누구도 그가 한 일을 해낸 사람은 없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나 기독교 학교 운동에 관여했던 모두가 그에게 빚진 자들이다.
- 신국원, 총신대학교 교수

마지막 날, 주님 주변엔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일꾼들이 주님의 손길을 받으며 위로 받고 있으리라. “누구이기에 주께서 저리도 다정하게 대하실까?” 그 가운데 주님 가까이에서 위로 받고 있을 웨슬리를 상상해 본다. Unsung Hero(칭송받지 못한 영웅). 참으로 알뜰하게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하나님의 일꾼. 그가 웨슬리다.
- 장수영, 포항공과대학교 교수

그의 사역만큼이나 감동적인 것은 그의 삶이다. 한국 교회를 위해서 그렇게 헌신적으로 사역했지만 어떤 보상도 기대하거나 원하지 않았다. 그가 해 놓은 일은 기독교 세계관을 확장하는 데 엄청난 영향을 미쳤지만, 그는 그것에 대해 자랑하지 않는다. 그저 겸손히 섬길 뿐이다.
- 방선기, 직장사역연구소 소장

문서 운동과 관련해서 웨슬리를 평한다면 그는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가 뿌린 씨앗과 흘린 땀과 쏟은 노력은 이미 많은 열매를 맺었고 앞으로도 더 많이 결실할 것이다. 쉬지 않고 끈질기게 발로 뛰는 문서 운동가, 그가 바로 웨슬리 선교사다.
- 홍병룡, 아바서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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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 소개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도미,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화란 자유대학교 철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화란 자유대학교에서 조교, 전임강사를 역임했고, 귀국 후에는 한국 외국어대학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임 중이다. 기독교운리실천 운동본부, 밀알선교단, 기독교학문연구회 이사장, 경제 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를 지내면서, `안 되도 끝까지 외친다.`는 선지자적 비관주의에 입각하여 정직, 생명 존중, 근검절약, 건전한 문화 창조 등 사회공동선을 제고하자는 시민운동을 솔선수범하여 왕성하게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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