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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기독교와 이슬람의 신은 같은가?

저자 : 미로슬라브 볼프  | IVP | 2016-01-04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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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ISBN 9788932814308
쪽수 416
크기 147*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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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프랑스 연쇄 테러,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의 ‘무슬림 미국 입금 금지 발언’

이슬람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한 할랄 식품 반대 기도회….

 

이슬람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가?

그 생각이 무엇이든, 이 책을 읽은 후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뀔 것이다!


우리 시대 평화와 화해의 신학자 볼프가

기독교와 이슬람의 공존을 위해 피해 가지 않고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은 같은가?”

기독교(21억, 31%)와 이슬람(16억, 23%)은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믿는 종교로서 그 숫자와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두 종교 간 오해와 반감 나아가 증오의 골은 깊고 이는 종종 테러 혹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으로 드러난다. 신학 전쟁이 실제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특히 프랑스 파리의 연쇄 테러를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일으켰다고 주장하고,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가 무슬림 미국 입국 금지 발언을 하는 등, 이슬람이 세계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이슬람권 음식인 할랄 푸드 등장, 할랄푸드테마파크 조성 계획 등에 대해 일부 기독교인이 이슬람 세력이 확장되는 걸 막아야 한다며 할랄 반대 기도회를 여는 등, 이슬람에 대한 적대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종교 간 문제가 끊이지 않는 이때, 볼프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제인 ‘두 종교의 신이 같은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무슬림과 그리스도인이 동일한 신을 예배한다고 주장한다. 신에 대한 묘사(유일성, 창조주, 비교 불가, 선하심)와 신의 명령(신 사랑, 이웃 사랑)의 유사성이 그 근거다. 공통의 신을 믿는다고 해도 기독교와 이슬람의 핵심 교리(삼위일체, 신의 속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이에 대해 볼프는 삼위일체 교리를 인정하지 않는 이슬람에 대해, 삼위일체는 신의 ‘상호 내주’를 의미하는 것으로 기독교가 여러 신을 믿는다는 그들의 이해는 틀렸으며 신적 본질은 절대 나뉘지 않는다고 변론한다. 반대로 이슬람의 알라가 ‘폭력적인 신’이라는 기독교의 이해도 틀렸으며, ‘사랑의 신’이라는 신의 특성에 대해 두 종교 간 차이점보다 유사성이 더 많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거를 바탕으로 각각 다른 종교에 속해 있으면서도 같은 신을 믿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볼프는 각 종교가 서로의 차이를 내세워 대립하고 배타하기보다는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다원성’으로서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로운 공존의 길을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신’은 무슬림과 기독교인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어떤 기독교인은 무슬림이 섬기는 신은 기독교인들이 예배하는 신과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은 분쟁으로 이어진다. 신은 양쪽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_들어가는 말

기독교인이나 무슬림 모두 사회적 화합에 필요하다고 해서 자신들을 위해 신을 디자인할 수는 없다! 종교 공동체인 양 진영은 신에 대한 한 가지 주장만큼은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바로 신이 신이라는 사실, 신은 주권자 창조주이며, 인간의 필요나 상상에 따라 디자인되고 변형될 수 있는 피조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의 과제는 두 신을 동일하게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 대신, 우리는 우리가 경배하는 신이 동일한지 밝혀 내는 것이어야 한다. 기독교인은 무슬림을 대신해 질문을 결정할 수 없고, 무슬림 역시 기독교인을 위해 질문에 답해 줄 수 없다. 그들 각자가 신의 계시라고 믿는 것들을 면밀히 살펴봄으로써 각자 질문을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탐구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최종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은 과연 꾸란의 하나님과 동일한가? 많은 것이 이 질문에 대한 답에 달려 있다.

_1장 교황과 왕자: 신, 깊은 간극 그리고 다리 놓기

신과 성삼위일체에 관하여 무슬림이 거부하는 모든 것을 기독교인 역시 거부한다. 바로 이것이 니콜라우스의 첫 번째 핵심 주장이다. 그의 두 번째 주장은 아마도 논쟁의 여지가 더 많을 것 같은데, 기독교인이 삼위일체에 대하여 인정하는 모든 것을 무슬림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_2장. 가톨릭 추기경과 모든 이의 유일하신 하나님

루터는 무슬림이 삼위일체를 부정할지라도 그들이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단지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루터의 하나님은 문화적이거나 정치적으로 규정된 충돌 너머에 존재하시기 때문에, 종교적·도덕적·문화적인 성취의 중요성은 상대화되고, 다른 이들을 위한 조건 없는 돌봄―하나님의 돌봄뿐 아니라 인간의 돌봄―이 갖는 중요성은 커진다. 둘째, 루터는 하나님에 대한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견해―심지어 루터 자신이 규정하는 방식의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적인 견해―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일차 관심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서는 문제에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그는 이러한 주요 공통점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그의 다혈질적이고 편향적인 성격이 주는 압력, 그의 묵시론적 신학의 틀이 갖는 배타성, 강력한 오스만의 군대가 ‘바로 문 앞에’ 다가와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루터가 그러한 중요한 공통점에 대해 한 번도 부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나님에 대한 관점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음에도,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동일한 신을 믿는다는 그의 신념은 이러한 일단의 강력한 반대 기제조차도 이길 만큼 충분히 확고했다.

_3장.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가와 튀르크인의 하나님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사랑에 관한 유명한 구절에서, 사도 바울은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라고 썼다(13:6). ‘차이점’ 접근을 따르는 이들은 불의를 기뻐하는 사람과 같다. ‘유사성’ 접근을 따르는 이들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사람이다. 전자는 상대방의 좋은 점은 보지 않고 늘 잘못만 지적해 대는 잔소리꾼 파트너인데 반해, 후자는 너그럽고 지혜롭게 사랑하는 사람들로서, 잘못에 눈을 감지는 않지만 잘한 일은 함께 기뻐해 준다. 기독교인은 무슬림이 신을 이해하는 방식 안에 혹 어떠한 진리라도 담겨 있는 것을 본다면 그것을 기뻐하도록 부름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동일한 하나님을 예배하는가 하는 문제에 ‘유사성’의 접근을 시도할 때만 가능하다. 공통점에 초점을 맞추되 중요한 차이점에 대해서는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태도가 지녀야 할 동전의 양면이다.

_4장.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무슬림과 기독교인은 신에 대한 다음 여섯 가지 주장에 서로 동의한다.

1. 신은 오직 한 분이시다.

2. 신은 신이 아닌 다른 모든 것을 창조했다.

3. 신은 신이 아닌 다른 모든 것과 완전히 다르다.

4. 신은 선하시다.

5. 신은 우리의 모든 존재를 다해 신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

6. 신은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이 여섯 가지의 주장에 대한 동의는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예배 대상이 동일하다는 결론을 가져온다. 신을 묘사하는 처음의 네 조항은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예배하는 대상이 동일하다는 주장을 입증해 준다. 신의 핵심 계명을 집약하는 나머지 두 가지 조항은 이러한 주장을 더욱 강화한다.

_5장. 공통의 신과 믿음의 문제

좋은 행위와 그릇된 행위는 그들이 실제로 예배하는 신을 보여 주는, 믿음보다 더 정확한 지표다.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를 통해 이 세상의 거짓 신을 예배할 수도 있고,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할 수도 있다.

_6장. 공통의 신과 실천의 문제

만약 무슬림이 기독교와 동일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는 다른 이유들이 타당하다면, 그들이 삼위일체를 부정한다는 사실만으로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그 대신 우리는 무슬림이 삼위일체를 거부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참된 본성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삼위일체에 대한 이 논의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기독교인에게는 그것이 무슬림에게만큼 근본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면, 삼위일체 교리는 본질적인 하나님에 대한 신념에 덧붙여진 선택 사항에 불과한가? 자동차 옵션을 선택하듯, 유대인과 무슬림은 기본 옵션만 장착한 단일주의 버전의 하나님을, 기독교인은 동일한 하나님의 ‘풀 옵션’인 삼위일체 버전을 선택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와 기독교 신앙 전체에서, 선택적 부가사항이 아닌 가장 중심이 되는 교리다. 하나님의 본성에서 삼위일체를 제거해 버리면,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성육신이라고 믿는 기독교인의 믿음이 무너지고, 이는 곧 기독교 신앙 전체의 괴멸로 이어진다. 삼위일체는 덧붙여진 추가 사항이 아니며 유일하신 하나님의 충만한 실재다. 이 하나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부르지 않고도 예배하는 것은 가능하지만(기독교인은 그렇게 단언한다), 그것은 언제나 불완전한 예배다.

_7장. 유일신과 성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을 향한 사랑과 모든 창조물에게 베푸는 자비 —우리는 이 두 가지 큰 틀 안에서, 꾸란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들과 사랑하지 않는 이들을 구분하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사랑이 많은 자비’는 하나님의 본성이기에, 하나님은 모든 이에게 자비롭다. 친절함을 통해서든, 엄격함을 통해서든, 꾸란에 따르면 하나님의 자비는 심지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들까지도 하나님에게 돌아오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이슬람의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 하나님은 경건치 않은 자들에게도 자비롭다고 볼 수 있다. 무슬림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에 동의하는 한, 기독교인들이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이 문제에 대해 둘 간에는 상당한 공통 기반이 생기는 것이다.

_9장. 영원하며 조건 없는 사랑

쾌락 추구를 중심축으로 돌고 도는 인생을 사는 것은 중대한 문화적 위기를 잘 보여 준다. 문제점은 주로 서양 ‘문명’에서 드러나고 있기는 하지만, 세계화의 날개를 타고(동일한 날개를 타고 엄청난 양의 제품이 운반되는 것처럼!) 세계 각지로 퍼지고 있다. 무슬림과 기독교인은 단순한 쾌락 추구의 무익함과 파괴성을 폭로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며 진정한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일을 위해 서로 동지가 될 수 있다.…교회 첨탑은 모스크의 미나레트가 아니고, 모스크의 미나레트는 교회 첨탑이 아니다. 비록 첨탑과 미나레트는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비슷하게 이해하는 그들 공통의 신을 서로 다른 모양으로 가리키고는 있지만, 적어도 단순한 쾌락 추구를 좋은 인생의 표지로 삼는 것으로부터 돌아서 있는 것만큼은 동일하다.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동시에 해롭다고 생각하는 것에 함께 저항하는 것이, 각각 가장 이롭다고 믿는 것을 위해 서로 싸우는 것보다 훨씬 낫다.

_11장. 편견, 개종 그리고 협력 관계

많은 기독교인과 무슬림은 다음의 세 가지 명제에 헌신되어 있다.

1. 유일하고 자비로운 신과 모든 사람의 관계는 동등한 조건으로 이루어진다.

2. 이웃 사랑은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가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자유를 다른 이들에게도 허용하도록 요구한다.

3. 신앙의 문제에서 강요가 있어서는 안 된다.

만약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이 세 가지 명제를 따른다면, 논리적으로 그들은 정치적 다원주의를 따르는 것이다. 그들이 종교적 배타주의자냐 종교적 다원주의자냐 하는 것은 어떤 차이도 가져오지 못한다. 이러한 명제를 받아들이는 종교적 배타주의자는, 그가 일관적이기만 하다면 정치적 다원주의자일 것이다.

_12장. 두 신앙, 공통의 신, 하나의 정부




들어가는 말 유일하신 하나님과 깊은 간극 11

 

1부 논쟁, 그 과거와 현재

1. 교황과 왕자: 신, 깊은 간극 그리고 다리 놓기 33

2. 가톨릭 추기경과 모든 이의 유일하신 하나님 59

3.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가와 튀르크인의 하나님 85

 

2부 두 신 아니면 한 신?

4.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109

5. 공통의 신과 믿음의 문제 129

6. 공통의 신과 실천의 문제 149

 

3부 결정적 주제: 삼위일체와 사랑

7. 유일신과 성삼위일체 171

8. 하나님의 자비 199

9. 영원하며 조건 없는 사랑 217

 

4부 같은 지붕 아래 살기

10. 같은 신, 같은 종교? 247

11. 편견, 개종 그리고 협력 관계 265

12. 두 신앙, 공통의 신, 하나의 정부 287

13. 신에 대한 경외심과 공공선 313

맺는말 현실 직시: 극단주의와의 싸움 333

 

감사의 말 343

주 347

인명 찾아보기 395

주제 찾아보기 399

성경 찾아보기 411

꾸란 찾아보기 413

볼프의 저작들은 매우 학문적인 저술을 포함해서 거의 예외 없이 모두 실존적인 씨름을 담고 있다. 『알라』도 예외가 아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겪고 있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로운 공존 방안을 찾아보기 위해 볼프는 자신의 지적 자산과 경험을 모두 동원하여 절실하게 자신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다. 볼프의 접근 방식은 묻고 답하고 다시 묻는 방식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논증적(argumentative)이다. 그러면서도 예컨대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나 마르틴 루터의 이슬람 이해를 거론할 때처럼 교회 전통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때는 역사적(historical) 접근 방식을 취한다. 그리고 마침내 볼프는 자신의 목적이 구원의 문제나 신학적 논쟁이 아니라 평화(irenic)에 있음을 드러낸다. ‘감사의 말’과 열 가지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맺는말’을 먼저 읽은 다음 ‘들어가는 말’부터 차례로 읽어 가면 좋을 것이다. 이슬람과 기독교가 전혀 다른 신을 믿는다고 생각하는 한국 기독교인과 신학자, 목회자에게 이 책은 큰 도전이 될 것이다.

강영안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전쟁과 분쟁의 취재 현장에서 항상 알라와 하나님을 만난다.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가운데, 내 가슴을 오가는 메시지는 ‘공존’이다. 오늘날 세계에는 끝없이 총성이 울리고 난민들이 넘쳐난다. 테러와 공포가 인류를 위협한다. 나만, 혹은 내 나라만 조용하면 되고 내 종교만 소중하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현대 분쟁의 근본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다. 이런 인식을 정확히 꿰뚫어 본 볼프는 『알라』에서 기독교와 이슬람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할 때만 두 종교가 이 세계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국제 분쟁 지역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피디로서, 또 한 아이의 엄마로서, 분쟁과 전쟁이 끝나기 바라는 모든 분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평화로운 세계에서 함께 살아갈 이론과 실천의 토대가 이 책에 담겨 있다.

김영미 국제 분쟁 지역 전문 프로듀서

“신관은 그 사람의 인생관을 결정한다.” 자신의 종교에 신실한 사람일수록 이 명제가 진실이 된다. 따라서 바른 신앙에 이르려면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해야 하고 이웃 종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종교의 신관 역시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이슬람을 직접적으로 경험해 본 일이 없기에 그들의 역사와 전통과 문화 그리고 종교는 우리에게 너무도 낯설다. 낯섦은 근거 없는 두려움의 원인이 되고, 그 두려움은 자주 증오 범죄의 원인이 된다. ‘이슬람포비아’가 대세인 한국 교회와 이슬람에 대한 편향적 비판이 대세인 한국 독서계에 이 책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독자는 『알라』를 통해 이슬람에 대한 낯섦을 극복하고 대화와 선교를 위한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봉 와싱톤한인교회 목사

이슬람 신앙을 지닌 무슬림들은 자신들이 경배하는 신을 아랍어로 알라라고 부른다. 국내 무슬림들은 이를 하나님이라고 번역하여 쓰는데, 기독교인들의 반발이 만만찮다. 우리 하나님과 다르니 쓰지 말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이슬람의 알라는 달의 신이라고 근거 없는 비방을 해 대기도 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는 최초의 인간 아담부터 아브라함, 모세, 예수에 이르는 유일신 신앙을 이슬람이 굳건히 계승한다고 믿었고, 오늘날 무슬림들은 이러한 믿음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다. 유대교, 기독교의 신이 바로 이슬람의 신이라는 의미다.

볼프는 독실한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신에 대한 서로의 이해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슬림과 유대인, 기독교인이 공통의 신을 믿는다고 하면서, 공통의 신을 믿는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상호 공존을 위해 협력하고 극단주의에는 함께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슬람에 대해 깊게 공부하지 않은 채 허구에 찬 정보만 끊임없이 생산해 내는 일부 비양심적인 목회자나 신학자의 말에만 의존하여 이슬람을 증오하고, 혐오하고, 무서워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알라』를 읽어 보라고 감히 권한다. 그래서 볼프의 희망처럼 한국 기독교인들이 먼저 무슬림들과 함께 아름다운 공존의 세상을 만들 수 있길 바란다. 공공선이 충만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슬림과 협력하는 기독교인을 본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즐겁지 아니한가!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이슬람학)

기독교인은 이슬람을 ‘한 손에는 꾸란, 한 손에는 칼’이라고 말한다. 무슬림은 기독교를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폭탄’이라고 말한다. 볼프는 이 책에서 두 종교 사이의 분열과 폭력과 살해에 대해, 또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대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해결책을 모색한다. 1400년간 쌓여 온 케케묵은 그리고 매우 어려운 이 질문을 피해 가지 않고 최선을 다해 답한다. 전쟁을 경험한 당사자로서 자신의 피와 지성과 신학을 담아 온 몸으로 글을 써 내려간 볼프의 공을 높이 평가한다.

무엇보다 그는 이 질문에 대해 폭넓고도 깊게, 그러나 이해할 만하고 접근하기 쉬운 방법으로 풀어낸다. 서구와 이슬람 양 진영의 역사 자료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유일신 논쟁에 대한 방법론을 검토하고 비평하면서, 정치적 다원주의 입장에서 적용점을 찾는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론보다는, 양 종교의 유일신론에 초점을 맞춰 인류를 위한 공동선을 도모한다.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이 있다. 2006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교에서 강연한 내용이 일부 무슬림을 분노케 했다. 이에 무슬림 지도자들이 교황에게 그의 연설을 비평하는 “공개서한”을 보냈고, 1년 뒤 “우리와 여러분 사이에 있는 공통의 말씀”이라는 문서가 나왔다. 볼프는 이에 대한 응답으로서 전 세계 기독교 지도자들이 서명한 문서인 “예일의 반응”을 주도해서 작성했다. 두 문서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 양 종교에서 긍정과 부정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왔고, 볼프는 좀더 구체적이고 깊은 설명을 할 필요를 느껴 『알라』를 집필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예일의 반응”의 후속편인 셈이다.

서구와 이슬람 간의 갈등의 역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한국 기독교는 객관적 입장에 설 필요가 있다.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고,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핵심 가치인 ‘이웃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에 다리를 놓는 평화와 화해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대안을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도전과 격려를 주는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정마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선교학 교수

볼프의 책은 명쾌하면서도 설득력 있다.

필립 젠킨스 베일러 대학교 역사학 교수

볼프가 이 책에서 펼쳐 놓는 것보다 더 선동적이고 민감한 질문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또한 이 질문을 해결하기에 볼프보다 더 적절한 기독교 지도자를 거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브라이언 맥클라렌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온다』 저자

볼프는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동일한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근본적인 사실을 명료하고 설득력 있으며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제시함으로써 종교 간의 이해와 평화라는 대의에 크게 기여했다.

세이예드 호세인 나스르 조지타운 대학교 이슬람학 교수

볼프는 동료 기독교인이 개인적이고 정치적이며 신학적인 여정을 떠나게 하려고 큰 용기를 냈다.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키겠지만, 이해하기 쉽고 몰입하게 만드는 책이다.

모나 시디키 글래스고 대학교 이슬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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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슬라브 볼프 소개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
전 세계 신학자와 종교 지도자들이 주목하는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크로아티아 복음주의 신학 대학(B.A.)과 미국 풀러 신학교(M.A.)에서 공부하고, 독일 튀빙겐 대학교에서 위르겐 몰트만의 지도로 박사 학위(Dr. theol.)와 교수 자격(Dr. theol. habil.)을 취득했다. 미국 풀러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고, 현재 예일 대학교에서 신학과 윤리학을 가르치면서 예일 신앙과문화연구소(The Yale Center for Faith and Culture) 소장으로도 일하고 있다. 종교와 인류 공영의 문제, 지구화, 화해 등의 주제를 연구한다.
그가 쓴 『배제와 포용』은 「크리스채너티투데이」(Christianity Today)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100권의 종교 서적 중 한 권으로 손꼽혔으며, 「크리스천센추리」(Christian Century)는 이 책을 지난 25년간 출간된 신학 도서 중 가장 중요한 책으로 소개했다. 그 밖에 『광장에 선 기독교』 『행동하는 기독교』 『알라』 『기억의 종말』 『인간의 번영』(이상 IVP), 『삼위일체와 교회』(새물결플러스),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국제제자훈련원), 『베풂과 용서』(복있는사람), 『노동의 미래—미래의 노동』(한국신학연구소)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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