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석영이 곱씹어내는 잊을 수 없는 맛의 추억!

《장길산》으로 잘 알려진 우리 시대 최고의 작가 황석영이 진한 눈물로 간하고 구수한 추억으로 비빈 잃어버린 음식, 흘러간 사랑, 그리고 되돌아본 인생 이야기!
우리들은 어떤 음식을 대할 때 순간 떠오르는 얼굴들, 사건들이 있다. 황석영은 음식을 대할 때 떠오르는 얼굴들, 추억들을 되살려 우리에게 잊혀져 가는 것들을 찾아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음식이 있을 때, 거기에 만남이 있고, 헤어짐이 있고, 대화와 목소리, 얼굴의 인상이 있고, 사람끼리의 관계가 형성됨을 말하면서 자신의 시대의 추억을 되씹어가며 인생살이와 사람의 관계를 말한다.
최근 들어, 어느 때보다도 활발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이 책을 통해 다양한 '먹거리'에 관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빼어난 지식과 미각을 선보이고 있다.
그때는 다들 배가 고팠지.
밀가루에 고추장 풀어 지진 장떡에 입이 벌어지고,
양은 냄비에 김치 넣고 찬밥을 비벼 먹어도 행복했어.
애플 파이 한 조각에 문득 스쳐가는 젊은 그네,
감방에서 나눠 먹던 눈물의 부침개와
모포 뒤집어 쓰고 꺽꺽 목이 메도록 쑤셔 넣던 건빵 한 봉지,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찾았던 노티 한 점...
"나는 이 글에서 무엇보다도 내 시대의 추억들을 되씹으면서 인생살이와 사람의 관계에 대하여 한 번 생각해 볼 작정이다."

1 흘러간 사랑
기억의 고리, 그 시작과 끝
세상으로 나가는 남자의 '창'
베개 너머로 흐트러지던…
마당 한귀퉁이의 쓸쓸한 과꽃처럼
그 비듬을 털어 주고 싶었어
2 나그네살이
붉은색 대지 위로 플라멩코가 흐르고
발을 구르고 치맛자락을 쳐들고
까마귀가 먹다 버린 배
장난감 같은 독일의 가정 식당
찐득하고 꺼룩한 에스프레소 한 잔
나이 든 창부 같은 도시, 베네치아
카프카의 음울한 눈이 생각나는 밤에
3 유배지의 한 끼니
철모에 삶아 먹은 닭 두 마리
건빵 다섯 봉지와 행복한 죽음
0.8평 감방에서 '소지'와 함께
싸락눈 날리던 날, 눈물의 부침개
4 낯선 땅에서
청춘의 시대는 막을 내렸노라
입안 가득 쑥밥의 매캐한 향내
나는 사방 누구의 자식인고
밥집 뒷간에 걸린 산수화
사정없이 대가리를 우적 깨물면
어리떨떨하다가 정신이 번쩍
고봉밥을 먹어 치우는 '밥 도둑놈'
구쟁기 된장국에 자리물회 한 점
사람 거시기 먹고 자라는 돋통시
5 잃어버린 그 맛
배고픈 날, 장떡 지지던 냄새
어머니는 고향이 그리웠던 것이다
시커멓게 언 감자를 먹는 지혜
숟가락 여러 개를 꽂아 냄비째로
옥수수 먹듯 산천어를 뜯으며
술 취한 아버지 손에 간고등어 한 손
허리춤에 매달렸던 '벤또'

내가 음식에 대한 글을 쓰겠다면서 '단식'의 기억을 먼저 떠올리는 것은 막 거른 포도주와 검은 빵뿐이었던 젊은 예수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화가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수천 점이나 그렸고, 지금도 성당에서는 희생양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제례 형식이 있다. 이른바, 최후의 만찬이다. 순수한 처음의 식사를 회복하는 일은 자기 시대를 정화하려는 모든 사람들의 기본 출발점이었다.
……(중략)
무엇보다도 음식은 사람끼리의 관계이며, 시간에 얹힌 기억들의 촉매이다. 지난 시대에 명절이나 아니면 특별한 날에 먹던 음식들은 근대화를 거치면서 흥청망청 모두 허드레 음식이 되었고, 미국이나 일본을 중심으로 한 간편식이나 개화 요리가 양 요리의 대종이 되어 뒤섞여 있다.
나는 이 글에서 무엇보다도 내 시대의 추억들을 되씹으면서 인생살이와 사람의 관계에 대하여 한 번 생각해 볼 작정이다.
┃저자 머리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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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속으로
맛있는 음식에는 노동의 땀과, 나누어 먹는 즐거움의 활기, 오래 살던 땅, 죽을 때까지 언제나 함께 사는 식구, 낯설고 이질적인 것과의 화해와 만남, 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며칠,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궁핍과 모자람이라는 조건이, 맛의 기억을 최상으로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미식가나 식도락자를 '맛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규정한다. 마치 진정한 사랑을 찾아서 끝없이 헤매는 돈 주앙처럼 말이다.
차와 파이를 먹으면서 어느 밤의 붉은 촛불이며 그네를 생각했다. 검은 비단 실타래처럼 베개 너머로 흐트러지던 머리도 희끗해졌을까…….
-흘러간 사랑 중에서-
마드리드의 노천 카페에 앉아 '마늘 수프'를 먹었다. 그야말로 우리 뚝배기처럼 생긴 질그릇에 담긴 뜨거운 수프는 묵은 치즈 냄새며 마늘이 어우러져 된장찌개 맛이 난다.
-낯선 땅에서-
추운 겨울철이나 명절이 돌아오면 재소자들은 간을 졸여 가며 술을 담근다. 포도 주스에 설탕과 곰팡이 띄운 빵을 뜯어 놓으면 포도주와 비슷한 과일 주가 되기도 한다.
-유배지의 한 끼니-
세발 낙지를 먹을 때는 우선 대가리를 잡고 한 손으로는 엄지와 검지로 낙지의 발가락들을 죽죽 훑어 내리면서 씹어 먹는다. 씹는 동안에도 흡판들이 간지럽게 볼따구니 안쪽과 혀에 간질간질 달라 붙는다.
-나그네살이 중에서-
문득 아내가 내게 '노티'가 뭐냐고 물었다. 글쎄……그게 무얼까, 했더니 그네가 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노티를 꼭 한 점만 먹고 싶다구…….
-잃어버린 맛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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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 리뷰
지은이에게 음식은 기억이다. 굴곡 많은 삶을 살아온 소설가의 내면에서 음식에 얽힌 추억들은 응달 장독 안에서 곰삭은 젓갈처럼 아름다운 문장으로 뽑아져나온다. 지금은 얼굴조차 가뭇한 애인들과 함께 배고팠던 시간들, 절간을 떠돌면서 맛봤던 절 특유의 산나물들, 감옥에서 포도 주스에 빵을 뜯어 넣어 만든 포도주를 간을 졸여가며 먹던 기억이 구수한 육담 속에 펼쳐진다. 세부적인 체험까지 놓치지 않는 기억의 힘, 뛰어난 소설적 문체와 구성 등으로 미뤄볼 때 요즘 흔한 '맛집 기행류'와는 그 격이 틀리다.
┃강성민 | 출판저널 2001/06-20

황석영 소개

1962년 단편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신인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70년 《조선일보》신춘문예에 단편 <탑>과 희곡 <환영의 돛>이 당선되었으며, 1989년에는 《무기의 그늘》로 만해문학상을, 2000년에는 《오래된 정원》으로 이산문학상과 단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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