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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선 성경주석 (양장) - SET

저자 : 박윤선  | 영음사 | 2002-02-13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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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 신국판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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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급판은 총36권, 양장판은 총20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총 권수는 다르지만, 내용은 보급판 양장판 모두 똑같습니다.

박윤선 목사는 1905년에 태어나 1988년에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그는 17세에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18세에 신학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신성중학교 3학년 시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의심하고 있었는데 “네 손에 들고 있는 성경이 하나님이 계신 증거니라”라는 세미한 음성을 듣고 그 이후로는 성경을 견고히 붙들고 평생 살았다
그는 한평생 신학 교육, 설교 사역, 주석 집필에 심혈을 기울인 신학자이자 목사이다. 그의 주석 집필 사역은 크게 네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 신학 수업과 총회 표준성경주석 저술 시기(1936-1940), (2) 만주 시기(1940-1945)와 부산 고려신학교 시기(1946-1960), (3) 서울 동산교회 목회 시기(1961-1964)와 총회신학교/총신대학 신학원 시기(1963-1974), (4) 은퇴 후 LA 시기(1975-1978).


1. 신학 수업과 총회 표준성경주석 저술 시기(1936-1940)

평양 숭실전문학교 4학년 시절에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자신의 일생을 주님께 드리기로 결심했다. 피가 펄펄 끓던 25세 때다. 이듬해에 신학을 전공하기 위해 100여명이 다니는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들어갔다. 3년 동안 공부한 그는 그곳에서 개혁주의는 배우지 못했다고 회고한다. 이 말은 아마도 “성경의 권위 문제를 신학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사실과 관련짓는 듯하다. 왜냐하면 비로소 미국 유학 동안에 그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32세에 미국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 입학해서 2년간 공부한 다음 신학석사 학위를 받는다. 이 기간 동안에 그는 “성경의 권위도 깨닫게 되었고, 그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신케 되었다”고 밝힌다. 이때까지 그가 익힌 언어는 한문, 영어, 독일어, 히브리어, 헬라어, 화란어까지 6개 언어였다. 특히 화란어를 자습으로 배운 것은 화란어 주석과 교리학을 읽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의 주석에 카이퍼, 바빙크, 크로솨이데, 크레이다너스, 스킬더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가 성경 주석 집필을 시작한 때는 유학을 하고 돌아온 후 평양 장로회신학교에서 성경 원어 강사로 2년 동안 봉사하던 시기였다. 총회의 표준 성경주석에 기고한 <고린도후서 주석>이 그의 최초의 주석이다. 학자가 귀한 당시라 해도 30대 초반에 주석 집필을 했다는 것은 이미 그가 미래의 지도자 대열에 들어섰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그는 다시 도미하여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반틸에게서 변증학을 배웠고 귀국하는 길에 일본에 머물면서 총회 표준성경주석(데살로니가전후서, 골로새서)을 집필하였다.


2. 만주신학교 시기(1940-1945)와 부산 고려신학교 시기(1946-1960)

만주의 교포 교회들이 신학교를 세우려고 추진하면서 그를 교수로 초청하였다. 1940년에 봉천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1941년 만주신학교에서 교수 사역을 시작하였다. 이때 그는 신사참배 문제와 타협하고 나가는 교계와 관계를 끊고 조용한 곳에서 성경 주석 저술에만 전념하기로 작정하였다. 1943년 만주신학교를 사임하고 만주의 안산으로 옮겨 해방 전까지 주석 저술에 전념하게 되는데, <요한계시록 주석>을 탈고하고 <시편 주석> 일부와 <공관복음 주석> 일부를 저술하였다. 그가 이렇게 한 배경에는 한국교회에 성경 주석이나 성경 해석에 필요한 책들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회고한다.
조국이 해방되었으나 자신의 고향인 평북 철산은 점점 자유가 없는 지역으로 변해 갔다. 그는 1946년 월남하여 교려신학교를 개교하고 그곳에서 14년 동안 교수 사역을 하였다. 하루 8시간씩 신학의 전 과목을 여러 해 강의하였으나 월급을 제때 받지 못하기도 하였다. 그뿐 아니라 주말마다 교회 설교 사역과 학생신앙운동(SFC)에서 주요 강사로 활동하면서 청년들의 신앙을 일으켰다.

고신 14년 동안에 성경주석은 성경 25권을 집필 탈고하였고 7권으로 편집하여 발행하였다. <공관복음 주석>(1953), <로마서 주석>(1954), <요한계시록 주석>(1949), <바울서신 주석>(1955), <히브리서·공동서신 주석>(1956), <시편 주석>(1957), <요한복음 주석>(1958)이다.
그가 고려신학교를 사임하고 잠시 부산 동래에 머물 때도 <사도행전 주석>을 탈고하였다.


3. 서울 동산교회 목회 시기(1961-1964)와 총회신학교/총신대학 신학원 시기(1963-1974)

고려신학교를 사임하고 잠시 부산에 있다가 서울로 옮겨 1961년 1월에 동산교회로 부임하여 목회하였다. 이 교회는 그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위로와 사랑을 받은 곳으로 기억한다. 그 이유는 개척교회여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 만큼 자신이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시기에 목회하면서 탈고한 주석은 15권이며 3권으로 편집하여 발행하였다. <고린도전후서 주석>(1962), <소선지서 주석>(1962), <이사야서 주석>(1964)이다.
1963년 용산에 위치한 총회신학교 교수로 취임하여, 잠시 총회 부산 분교에서 2년간 교수 사역을 하면서 수정동에 위치한 성산교회를 담임도 하였다. 이때 <시편 주석> 증보 작업을 마쳤다.
1967년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사당동 총회신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과목을 가르쳤으며 1968년에 한성교회를 개척하여 1973년까지 섬기기도 하였다.
그가 교수 사역, 설교 사역으로 과로하여 1971년 담석으로 요양차 미국 LA에 가 있을 때에도(10개월) <잠언 주석>을 탈고하였다. 1972년도에 귀국하여 1974년 70세에 은퇴하였다.
그가 총신 교수 11년 동안에 탈고한 성경주석은 모두 13권이며 6권으로 편집하여 발행하였다. <예레미야·애가 주석>(1965), <에스겔·다니엘 주석>(1967), <창세기·출애굽기 주석>(1968),<레위기·민수기·신명기 주석>(1971), <잠언 주석>(1972), <욥기·전도서·아가서 주석>(1974)이다.

4. 은퇴 후 LA 시기(1975-1978)

이 시기 4년 동안에 성경 주석 집필에 몰두하여 나머지 성경 12권을 탈고하였고 3권으로 편집하여 발행하였다. <여호수아·사사기·룻기 주석>(1976), <사무엘서·열왕기서·역대기 주석>(1978), <에스라·느헤미야·에스더 주석>(1979)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에스더를 마지막으로 성경 66권을 모두 주석 집필하여 양장본 20권으로 발행했다. 그가 처음에 총회 표준성경주석 저술에 관여했으나 나중에는 독자적으로 성경 주석 집필에 몰두하기 시작하여 교수 사역 은퇴 후 LA에 머무는 시기까지 무려 42년 동안 주석 집필에 전념하였다.


[맺는 말]

박윤선 목사의 성경주석은 아래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로, 그의 주석 저술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게 하는 한 방편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개혁주의의 기본 원리로 이해하고서 이 원리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려면 성경이 잘 해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주석 저술의 동기는, 나 자신이 먼저 성경을 바로 깨닫고 깊이 안 후에 이 성경을 올바로 증거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성경대로 믿음을 가지도록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의 주석에는 특별히 요약 설교가 1,000편 이상 들어 있다. 이는 그의 주석이 학자 중심의 것이 아니라 목회적 차원, 다시 말해 당시 교역자들의 설교를 성경적으로 하도록 돕기 위한 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는 박윤선 목사가 자신의 신학을 사적 소유로 생각하지 않고 교회를 위한 공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다는 의미일 것이다.
셋째로, 지적 요소가 강한 개혁주의 틀에 영적인 것을 들여 놓았다는 것이다. 영적인 요소가 강한 신령주의나 경건주의와는 달리 서양의 개혁주의는 지적 요소가 강한 편이다. 그러나 박윤선 목사는 자신의 개혁주의에 영적인 요소를 들여 놓음으로써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사모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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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선 소개

박윤선은 말씀과 기도에 사로잡힌 목사요 신학자이다. 평안북도 백량면의 어느 해변 마을에서 어렸을 때 유학을 배웠고, 17세 되던 해 마을에서 6km 떨어진 동문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선천의 신성중학교 3학년 시절에 “네 손에 들고 있는 성경이 하나님이 계신 증거니라”라는 세미한 음성을 듣는 가운데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확신하게 되었다. 숭실전문학교와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다닐 때 그의 신앙은 보수주의이면서 주관적 체험을 탐구하는 수준이었고 미국의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신학 연구를 하면서 비로소 개혁주의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귀국 후 평양 장로회신학교, 만주 봉천신학교, 부산 고려신학교(현 고신대 신대원)에서 가르쳤으며 네덜란드에 잠시 유학을 다녀온 후 서울의 총회신학교(현 총신대 신대원)와 합동신학교(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가르쳤다. 밖으로는 자유주의 신학, 안으로는 교권주의에서 벗어나 참된 개혁주의 신앙을 세우는 일에 평생 혼신을 다해 온 목사요 신학자이지만 이론만이 아닌 말씀 전파와 성경주석 저술을 평생의 과제로 여기고 40여년에 걸쳐 성경 전권을 주석하여 완간함으로써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의 강단 사역에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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