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하나님을 본 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말씀에 냉정히 비추어보면 나는 하나님을 멀리 해야 현명하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나는 그 하나님을 너무 자주, 헤프게 떠벌여왔다. 지금까지 아직 한 번도 즉각 죽지 않은걸 보면 내가 본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의 정면이 아니라 뒷면에 지나지 않았던가 보다.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피어오르다 종적을 알 수 없이 사라지는 하나님의 순간적인 이미지! 바로 하니님의 뒷모습! 그래서 내 신학적 희망의 최대치는 늘 그 언저리에서 맴돌 뿐이다. 내 독서와 공부의 자리에서뿐 아니라 내 산보와 불면의 사색 가운데서 그 뒷모습은 뜬금없이 스치며 숨어계신 하나님을 순간적으로 비추어준다. 상큼한 그대의 뒷모습 속에서도 담백한 하나님의 뒷모습은 경꼐없이 가물거린다.

첫 번째 신학수상집 《발밑의 명상, 길 위의 신학》을 낸 지 5년이 흘렀다. 내가 살아낸 그 세월이 수상하여 써둔 글을 헤집다 보니 얼떨결에 이 성근 책이 만들어졌다. 그때와 다름없이 지금도 내게는 여전히 틈새의 보행이 중요하고 내 신학의 조형을 위하여 변함없이 여백의 산책이 필요하다. 아직 버틸 만한 두 다리로 그동안 열심히 걸어왔으니 이제 그 덧없는 세월을 이 책으로 기념하며 표식으로 세워둔다. 비루한 유랑생활의 표식이었던 야곱의 돌베개가 하나님의 제단이 되고 곧 하늘의 집이 된 내력처럼, 나의 이 소박한 표식도 그런 은미한 기적의 출구가 되길 빈다.

-저자 서문중

목차

제1부 일상의 틈새와 여백
문체, 또는 영혼의 무늬
말줄임표 현상
문자 메시지
동화적인 순간
까만 옷들의 행렬
원족의 동선 둘
야간풍경, 내면풍경
자정 너머로의 산책
기억할 만한 마주침
그대의 뒷모습
뜬금없는 산행
봄기운에 잇대어
상추의 환(幻)
비 오는 날
서늘한 계절의 여운
네 개의 시선
짧은 직관, 긴 성찰
호명된 타자들의 메아리
격렬한 소통의 판타지
맨 처음은 왜 서글픈가
잔인한 친절의 비극
충돌하는 인간
현대판 환상과 마법의 풍경
칼과 노래가 만나는 방식
우연이 만드는 우여곡절
아비 없는 시대의 초상
문자와 이미지의 파편들

제2부 낮은 신학의 부스러기들
잠의 신학적 의미
몸과 잠의 근황
음지의 위대한 영혼
예수와 사랑법
‘하나님의 뜻’과 그 틈새
하나님, 그냥 놓아주기
욥기와 유마경
그 목수, 예수
포도주의 연금술
집과 꿈
신앙적 엄숙주의
성숙한 시대
목사와 목회의 병통
크리스마스 자전기
머리카락 단상
거룩한 식사
어떤 자살
알 수 없는 것들
목소리의 교훈
겨울나무의 영성
하나님이 있든, 없든

제3부 물속으로 길을 묻다
이방 물고기가 선사한 황홀
냉천에 고향을 둔 물의 길
구아나강, 또 하나의 자궁
빗속에 결가부좌를 튼 내력
횡보의 사연을 추스르다
버릴 때와 거둘 때
성게의 우주, 그 조촐한 미덕
갈치의 추억, 상어의 현실
이방과 이방 사이의 소통지로
그물질과 낚시질, 그 질적 층위
긴 밤 지새우고, 새우와 함께
공수거의 파국

제4부 성서의 변두리, 실존의 에누리
예수와 ‘달란트’ 리얼리즘
예배의 일상, 일상의 예배
파트너십으로서의 부부관계
환대하는 교육, 영접하는 학교
태초의 귀환
천국ㆍ일자리ㆍ사회복지
작은 헌금의 큰 의미
자녀를 노엽게 말라
영광스런 이별의 기도
성결의 안과 밖, 안팎의 성결
선한 목자의 길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동역자로서의 여성
‘더 악한 귀신 일곱’과 맞서기
‘알지 못하는 신’을 알리는 법
‘하나님의 가족’을 향하여
파송 받은 자의 윤리
불의 성령, 말의 혁명
예수의 새벽기도
소금과 빛의 선교
말의 영성, 믿음의 치유
부활을 위해 썩는 씨
섬세하게 준비하는 지혜
지도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슬픈 성탄절, 그 아이러니의 기원

추천의 글

신학자에게 수상집은 특별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슨 삶의 회한이라도 있는 것일까? 우유를 세계짜다보면 피가 나온다. 본서는 일상의 회한을 우유를 부드럽게 짜내듯이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뒷모습, 아버지의 등 언저리에 골골이 새겨진 삶의 표상들을 보며 우리는 아버지의 입술에 그려진 미소와 눈가에 새겨진 주름의 깊이를 재어본다. 저자는 바로 이 같은 타자화된 아버지의 뒷모습을 통하여 우리의 모습을 되새김질한다. 물 한 모금 머금고 하늘 쳐다보며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 산새처럼 본서는 소박한 예를 하나님 앞에서 갖출 것을 역설한다.
│김성규(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