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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선 인터뷰

저자 : 한부선  | 키아츠(KIATS) | 2018-07-23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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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ISBN 9791160371079
쪽수 552
크기 1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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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헌트 선교사가 1980년과 1982년에 로버트 슈스터와 진행한 인터뷰. 브루스 헌트가 80대 인생의 황혼기에 한국교회와 정통신학을 위해 애쓴 자신의 삶과 신앙을 회고한 기록이다.


책 속으로


슈스터
휘튼대학교 선교자료 컬렉션을 위해 로버트 슈스터Robert Shuster가 진행하는 루스 헌트 목사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이 인터뷰는 [1980년] 3월 22일 오전 9시 45분에 펜실베니아주 애빙던에 있는 헌트 목사님의 집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헌트 목사님, 목사님의 가정적 배경부터 시작해 볼까요? 어디서 태어나셨나요?


헌트
제 아내와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저의 부모님들은 그곳의 선교사이셨지요. 제 아버지께서는 1897년에 한국으로 가셨습니다. 제가 알기로 제 아내의 부모님은 1901년에 한국으로 가셨지요. 1900년인지 1901년인지 확실하지는 않네요.


슈스터
부모님의 성함은 어떻게 되시나요?


헌트
제 아버지는 윌리엄 브루스터 헌트William B. Hunt(1869-1953), 한위렴이고, 제 어머니는 버타 F. M. 헌트Bertha F. M. Hunt입니다. 부모님은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의 부모님인 윌리암 뉴턴 블레어William N. Blair(1876-1970), 방위량와 에디스 블레어Edith Blair는 캔자스주 출신이셨습니다.


슈스터
부모님들도 장로교 선교회 소속이셨나요?


헌트
예, 저와 제 아내의 부모님 모두 장로교 선교회 소속이셨습니다.


슈스터
그럼 목사님은 모든 유년시절과 소년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셨나요?


헌트
예, 16살 때까지요. 제가 2살 때와 11살 때 부모님이 휴가를 가셨던 때를 제외하고는 16살 때까지 한국에서 자랐습니다.


슈스터
서양 선교사의 자녀가 한국에서 자란다는 것은 어떤가요?


헌트
글쎄요. 만약 누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그 사람은 항상 어느 정도 이방인이지요. 어느 곳을 가든지 사람들이 쳐다보고, 그이에 대해 평하고, 아마 그이에 대해 여러 가지 것들을 말하겠죠. 한국인 아이들이 저를 놀린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저를 놀린 건 일본인 아이들이었죠. 일본인 아이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이방인이었지만, 그 아이들은 제가 지나갈 때마다 저를 불러댔죠. 아무튼 사람들은 저를 궁금해했어요. 저는 제가 서커스에 등장하는 별난 사람 같다고 느꼈죠. 제 평생 말이에요. 그래요, 그런 사람은 약간 이방인으로서 성장하게 됩니다.


슈스터
그럼, 목사님의 또래 친구들은 거의 한국인들이었나요?


헌트
예, 비록 여러 다른 선교사 가정이 있었지만요. 우리는 선교지부에서 살았는데, 최소한 네 가족이 같이 살았어요. 의사 한 분과 남자 전도사 세 분, 여자 전도사 두 분 등이었지요. 그래서 우리는 선교지부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죠. 어떤 때에는 세 명의 아이가 있는 가족도 있었어요. 그중의 소년 한 명이 저와 동갑이었고, 저보다 어린 다른 아이들도 있었죠.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 저는 한국 아이들과 놀았어요.


슈스터
목사님이나 목사님의 가족은 한 선교지부에서 계속 머무르셨나요?


헌트
음, 저는 제 아내와 아내의 부모님이 계속해서 머물며 살던, 한국의 같은 선교지부에서 태어났어요.


슈스터
그 선교지부는 어디였습니까?


헌트
평양, 북한의 현재 수도이지요. 하지만 제 아버지는 제가 네 살 혹은 세 살 무렵에, 제가 생각하기에 세 살쯤에 다른 선교지부로 옮기셨어요. 그리고 새로 옮긴 그곳이 제가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저희 가족의 집이었지요.


슈스터
새로 옮긴 그 선교지부는 어디였죠?


헌트
“재령”載寧이라고 불리는 곳이었어요. 미국인들은 가끔 발음하기 힘들어서 그냥 “재-뤼영(Jae Ryeong)”이라고 했었죠. 하지만 한국 발음은 “재령”이에요.


슈스터
철자가 어떻게 됩니까?


헌트
미국인들은 J-A-E-R-Y-O-U-N-G 라고 철자를 써요.


슈스터
재령. 재령.


헌트
그냥 “재령”이라고 해요. 굴리는 ‘r’ 발음 없이 한국인들이 쉽게 발음할 수 있죠.


슈스터
목사님의 부모님은 어떤 사역을 하셨나요?


헌트
아버지는 안수를 받은 목사이셨어요. 거리와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고 작은 교회들에서 설교하며, 성경강좌를 열고, 성경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에 소명을 가지고 계셨죠. 아버지는 참 많이 돌아다니시면서 순회 설교를 하셨어요. 일생의 거의 3분의 1 정도는 집에 계시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실 이런 생활은 한국의 모든 선교사에게 일반적인 것이었어요. 평생의 3분의 1을 집에서 떠나있는 삶이죠. 지난 백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집에서 떨어져서 지방의 다른 교회들을 돌아다니지 않는 선교사들은 거의 없었어요. 그리고 아버지도 그래야만 하셨죠. 예전에 자동차가 없었을 때는 걷거나 말을 타고 이동했어요. 선교사는 집으로 돌아오고 다시 나가기보다는, 거의 한 달 동안 그저 가기만 해야 할 수도 있었고,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죠. 일단 어떤 지역으로 가게 되면, 그 일대에 있는 여러 다른 교회들 혹은 공동체들을 계속해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아이였던 제가 기억하기로 어머니는 빵을 구워, 그것을 아버지에게 보내시곤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신선한 빵을 드실 수 있으셨지요. 그리고 어머니는 편지들과 갈아입을 옷 같은 것도 보내셨을 거예요. 그래서 아버지는 매번 집에 돌아오시지 않아도 되셨죠. 초기의 선교사들은 매우 많이 돌아다녔어요.


슈스터
아버지가 교회를 개척하셨나요, 아니면 기존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하셨나요?


헌트
음….


슈스터
아니면 둘 다 하셨나요?


헌트
둘 다 하셨다고 해야겠네요. 궁극적으로 아버지가 한 일은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했을 때 그들과 함께 모임을 만들려고 노력하시고, 기독교인은
다른 기독교인과 만나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셨어요. 그리고 그 교회들을 다시 방문하셨죠. 제가 보기에 아버지가 한 일은 바울이 한 일과 비슷해요. 아버지는 한 장소에 가셔서 설교하시고, 기독교인들의 모임이 시작되면 다시 가셔서 그들을 방문하시곤 했죠.
한국에서는 선교사들이 일 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한 번씩 각 공동체를 그저 하룻밤 묵으면서 방문하는 것이 일종의 규칙이랍니다. 이런 방문이 그렇게 큰 보살핌 같이 보이진 않지
만, 각 공동체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그들에게 세례를 주고, 문제가 없는지 살피고, 교리문답과 같은 일을 하기 위해 방문합니다. 이 방문을 통해서 그 지역 기독교인들이 참석하는 성경강좌Bible conferences가 열리고, 혹은 일부 기독교인들이 오고 싶어 하는 성경학교Bible Institute가 중심지에 생기기도 했어요(그들은 앞장서 가는 데 관심이 있었지요).
선교사들은 매년 겨울마다 하나는 남자들을 위해, 다른 하나는 여자들을 위해 성경을 공부하는 집회를 열었어요. 이러한 집회는 아마도 일주일에서 10일 정도 개최했을 거예요. 비록 선교사들이 1년에 두 번 이상 규칙적으로 작은 교회들을 일일이 모두 방문하진 못했지만, 이 작은 교회들은 잘 성장하고 있었어요. 이 교회들의 기독교인들은 성경공부를 통해서 성장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선교사는 그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를 방문했어요. 혹은 만약 그 교회가 성경강좌를 열기 원한다면, 선교사들은 그러한 모임을 만들어 주었어요. 이 시기에 이러한 집회를 한국어로 “성경탐구 모임”이라는 뜻의 “사경회”라고 부르곤 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부흥이라는 용어를 쓰기 좋아합니다. 그들은 부흥회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고양하는 것을 봤고, 그래서 매년 부흥회를 개최하기를 원하지요. 각 교회는 한 차례의 연간 부흥회 혹은 지역 차원에서 열리는 몇 번의 부흥회를 개최하거나, 아니면 이 둘 모두를 개최하길 원합니다. 제 인생의 후반기에 저는 사경회라는 성경탐구 모임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저의 사명 중 하나라고 느꼈어요. 사경회는 매우 좋은 용어예요. 이것은 부흥이 아니에요. 저는 만약 사람들이 성경을 탐구하고, 그것이 주님께서 이끄시는 길 안에 있다면 주님께서 [그들 안에] 부흥하시리라고 믿어요.


슈스터
그럼 사경회는 공부, 그러니까 성경공부라고 할 수 있나요?


헌트
예, 맞아요. 그리고 어떤 특별한 여흥도 없지요. 제 말은 그들은 아마도 자주 저녁에 친목행사를 갖지만, 사경회는 어떤 특별한 친목을 위해 모이는 시간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사경회는 작은 교회들과 모임들이 [성장하기 위한] 매우 좋은 방법이었어요. 사람들이 사경회에 가면, 거기서 다른 교회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고, 그러한 만남은 교회의 하나 됨을 느끼게 해주었죠. 저는 이것이 매우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슈스터
물론 1907년에 한국에서 기독교가 부흥할 당시에 목사님은 매우 어리셨지요?


헌트
예, 맞아요.


슈스터
목사님의 아버님이 그 부흥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신 적이 있나요? 아니면 그 부흥을 직접 목격하신 건가요?


헌트
제가 어렸을 때 직접 보았지요. 물론 저는 아주 어렸기 때문에(제 생각에 그때 저는 4살밖에 안 되었을 거예요) 잘 알지는 못했지요. 그래서 어렸던 제가 이해하지 못했던 당시의 부흥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나중에 자란 이후에 들었답니다. 하지만 당시에 저희 집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보았던 기억은 확실히 있어요. 저희 집에는 소, 돼지, 말 등을 돌봐주시는 정원사 한 분이 계셨어요(그래서 아버지는 자유롭게 지방으로 돌아다니실 수 있으셨죠). 그 당시에 저희 집에는 수돗물 시설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그 정원사는 매일 물을 길러야 했어요. 그리고 저희 집에는 요리사 한 분과 저와 같은 어린아이들을 돌봐주시고 빨래를 해 주시던 가정부 한 분도 계셨어요. 아버지에게는 비서 한 분이 계셨고요. 그래서 저희 집에는 저희 가족을 위해 일하시는 사람들의 작은 공동체가 있었답니다. 저는 그분들이 일하실 때 자주 찬송가를 부르시던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이러한 광경은 제가 전에 보지 못했던 것이었지만, 그분들이 부르던 찬송은 전에 많이 들었던 것이었죠. 그 분들은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기쁜 일이 있어 천국 종 치네’, ‘그곳에는….’ 등의 찬송가를 부르셨었죠. 그 찬송이 뭐였죠. 아, ‘오늘은 기쁜 날T’here Is Joy Today같은 찬송도요. 그 찬송들이 영어로는 어떻게 되는지 전부 기억나지 않지만, 몇 개는 기억나네요. ‘나의 죄를 씻기는’ 같은 찬송도 있었어요. 그분들은 일하실 때 이런 찬송들을 부르시곤 하셨어요. 우리 집 안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볼 수 있었지요. 저희 집에는 이러한 분들이 일하러 오셨고, 이분들이 일하는 것을 도와
주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물론 우리 집은 선교지부 내에서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 선교사들은 선교지부에서 그 지방 전체에 대한 사역을 하였지요. 그리고 작은 공동체에서 오신 분들이 가끔 저희 집에 오셨어요. 그분들은 기독교에 관한 소책자나 서적들을 필요로 하셨어요. 아버지의 책장은 소책자들로 가득 차 있었고 다른 서적들도 가지고 있었어요. 당시에 아버지가 책임지시던 기독교 서적 행상인인 권서가 있었어요. 그는 지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성경과 찬송가를 판매하는 사람이었지요.


슈스터
성경과 찬송가요?


헌트
네. 성경과 찬송가 책이요. 서적 행상인은 당나귀에 책들을 싣고 지방을 돌아다녔지요.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책들을 싣고 또 지방으로 갔어요. 하지만 그때는 더 많은 사람이 책자를 구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오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은 서적들을 가지고 모임을 할 수 있었죠. 당시에는 더 많은 활동이 있었어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그때 또 몇몇 사람들이 있었어요(아마 좀 더 이후였는지도 모르겠네요. 아시다시피 이 중에 몇 가지 일들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과 잘 맞아떨어지네요). 아버지는 죄를 고백하고 공부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잘 대해 주시고, 그들과 함께 기도했어요. 죄와 죄로부터 해방된 기쁨에 대해서 사람들의 마음과 감정에 큰 동요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그들은 ‘나의 죄를 씻기는’과 그와 같은 다른 찬송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어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제가 소년이었을 때 저는 그들의 감정을 느꼈던 것 같아요.



프롤로그- 김재현
컬렉션 소개 … 10
테이프 세부 내용 … 16


 오디오 테이프 녹취록
Section 1 한글 번역본
  테이프 1번 … 27
  테이프 2번 … 75
  테이프 3번 … 113
  테이프 4번 … 181
  테이프 5번 … 221


한부선 연보 … 272
헌트 관련 주요 문헌 … 276
에필로그1- 박응규 … 280
에필로그2- 최재건 … 291
추천사- 이상규, 정근두, 정주채 … 300


Section 2 영어 원본 …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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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선 소개

평양에서 태어나 아버지 한위렴(William B. Hunt)과 장인 방위량(William N. Blair)을 이어 2대째 한국을 섬긴 선교사 브루스 헌트. 미국 휘튼대학, 프린스턴신학대학,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 등에서 공부하고 충주와 부산, 만주 등 여러 곳에서 한국인 선교에 힘썼다. 특히 일본의 신사참배에 적극 반대하고, 만주에서 ‘언약문서’에 기초하여 흩어진 한인 기독교인들을 돌보다 자신 또한 옥중에 수감된 후 아시아에서 강제로 쫓겨났다. 해방 후 다시 한국을 찾아온 후 한국 신앙의 가치를 정리하고 신학의 기틀을 마련했던 브루스 헌트의 삶과 신학은 고신의 태동과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고난 속에 피어오른 한국 신앙에 대한 생생한 증언, 선교의 본질을 찾고자 한 그의 고민과 외침, 한국교회를 향한 무한한 애정과 평가는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참 신앙에 대한 질문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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