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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 (2판)

너무 쉽게 외면한 기독교의 역사이자 다시 찾아야 할 기독교의 미래, 복음주의!

저자 :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  | 한국기독학생회(IVP) | 2018-03-08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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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ISBN 9788932816128
쪽수 288
크기 153*224

이 책이 속한 분야



너무 쉽게 외면한 기독교의 역사이자
다시 찾아야 할 기독교의 미래, 복음주의!
그 역사와 현재를 톺아보는 교과서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신학 여정이 담긴 책의 귀환


‘대공황’ 주도적 교회 컨설턴트이자 교회학자 앨런 록스버러는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상황을 이 단어 하나로 요약했다. <교회 너머의 교회>(한국 IVP 역간 예정)에서 그는, 1950년 이후 침체기에 접어든 교회는 이후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방안들을 마련하고 적용하는 데 혈안이 되었지만, 결국 여기저기 덧댄 누더기를 걸친 꼴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교회 성장이라는 열매를 맺고 있는 교회들이 있다.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인격적 회심과 복음전도를 강조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에 두는 교회들, 바로 복음주의 교회들이다. 성장세가 둔화되었다고는 하나 복음주의 교회의 성장은 여전히 주목할 만하다. 특히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비서구권 및 남반구 중심으로 한 성장은 1990년 대 중반 이후 세계 기독교학이라는 학문을 낳는 배경이 되었다. 이렇듯 복음주의, 복음주의 교회 현상에 대한 관심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동시에 복음주의는 트럼프 당선에 큰 몫을 한 미국 복음주의 모습에서처럼 전 세계 교회의 골칫거리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고, 심지어 용도 폐기해야 할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한국 교회의 형성과 발전에서 복음주의가 큰 역할을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 교회를 빚었던 초기 선교사들의 신앙, 빌리 그래이엄의 전도집회, 신앙선교 단체들의 전도 활동, 80년대 사회 참여와 세계관 운동으로 집약된 지성 사역 등은 모두 복음주의 맥락에서 작동했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역사성과 상관성을 한국 교회는 너무나 빨리 잊었고 너무나 쉽게 간과했다. 더 이상 누구도 복음주의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복음주의에 관심 두는 것을 교파에 관심을 두는 것보다 더 이상하게 생각하는 형국이 되었다. 그러나 복음주의는 전 세계 기독교에서 거의 유일하게 성장하고 있는 신앙 운동이며, 한국 교회를 가슴 뛰게 만들었던 신앙 전통이다. 그것만으로도 한국 교회가 복음주의 역사와 현재, 미래에 관심을 가져야 할 충분한 이유다.    


독보적인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는 그런 의미에서 이 분야에 관한 한 가장 잘 쓰인 교과서이자 필독서다. 복음주의 안에서 지적 정합성과 현대적 적실성의 탁월함을 발견하고 기독교의 미래를 본 저자는 복음주의 역사와 매력을 명쾌하게 요약, 정리하고 복음주의가 직면한 위기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충실하게 제공해 줌으로써 복음주의가 잠재적 가능성을 예측한다. 원서가 20년 전에 출간되었기에 그의 예측과 진단이 얼마나 정확한지를, 즉 저자의 기독교의 미래로 제시한 복음주의의 장점과 미덕들이 어떻게 전 세계 그리스도인을 사로잡았으며, 복음주의 약점들로 지목되었던 교파적 독단성 및 편협성,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들의 비도덕성 등이 어떻게 현실이 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복음주의에는 맥그래스가 염려했던 온갖 종류의 부정적 요소가 득세해 있고, 따라서 그 교회를 모판으로 해서 성장한 한국 교회에는 그와 유사한 병적 증상들로 넘쳐나 있다. 이 점에서도 이 책을 그저 복음주의 역사를 잘 정리한 교과서 정도로 치부해선 안 된다. 저자가 유기체적 지성의 대표로 꼽았던 존 스토트의 말대로 이 책은 복음주의자든 아니든 모두가 읽어야 한다. 그가 저자의 솔직함과 지혜와 열정에 사로잡혔듯이 많은 독자들도 분명 그럴 것이다.

참고로, 이 책은 1997년 같은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책의 개정판으로, 오역을 바로잡고, 번역을 전면 새로 했으며, 우리말 해설판을 덧붙여 새 생명을 불어 넣었기에 이미 읽은 독자들도 새로운 마음으로 독서를 즐길 수 있다.


■ 독자 대상
한국 교회의 영적 뿌리인 복음주의에 대해 알기 위해 표준서를 찾는 그리스도인
순전한 기독교를 지향하고 복음주의 이후를 모색하는 그리스도인 
기독교에서 거의 유일하게 성장하는 복음주의의 매력을 통해 대안을 모색하는 그리스도인


책 속으로


이 책을 쓰는 나는 헌신적인 동시에 비판적인 복음주의자다. 나는 자신을 복음주의자로 자처하거나 이 운동의 핵심적인 믿음과 태도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지지한다. 나는 1971년 옥스퍼드 기독학생회(Oxford Inter-Collegiate Christian Union)의 영향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 제임스 패커(James I. Packer), 존 스토트(John Stott, 1921-2011) 같은 영국의 대표적 복음주의자들의 글과 강연에 힘입어 성장했다. 만일 나의 기독교 신앙의 기원을 어느 한 사람이나 단체에서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복음주의일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말하겠지만, 나는 복음주의에 대한 확신과 관련해 한동안 위기를 겪었다. 학문 영역에서 복음주의가 받았던 낮은 평가가 한 원인이었다. 나는 복음주의자 대부분이 외면했던 문제들에 맞서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자유주의라는 엄청난 과제를 붙들고 씨름한 뒤에야 비로소 내가 갖고 있던 복음주의의 유산을 더욱 귀하고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이 “광야 시기”에 겪었던 지적 방황으로 나는 복음주의가 영적으로나 지적으로 얼마나 만족스러운지를 확실히 깨달았다. 또한 복음주의가 과거에 대체로 무시했던(물론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내적·외적 문제들을 진지하게 다루어야 할 절실한 필요가 있음도 알았다.


지난 10여 년간 나는 영국 성공회 소속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신학교인 옥스퍼드 대학교 위클리프 홀에서 기독교 신학을 가르쳐 왔는데 그 덕에 영국의 상황에서 복음주의가 직면한 의제와 문제들을 숙지할 수 있었다. 또한 국제복음주의학생회(International Fellowship of Evangelical Students: 국제 IVF—편집자 주)의 영국 지부인 기독대학인연합(Universities
and Colleges Christian Fellowship)의 명예 부대표직을 수행하면서 기독 학생들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그뿐 아니라 캐나다 밴쿠버에 소재한 리젠트 칼리지의 조직신학 연구교수로서 북미의 선구적인 복음주의 평신도 신학 연구 기관에 재학중인 열정적이고 국제적인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서 배우는 특권을 누렸다. 게다가 선도적인
복음주의 잡지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북미와 전 세계적 맥락에서 특히 복음주의 기독교가 직면한 주요 사안들과 관련된 논의에 기여하는 특권을 누리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을 감당하면서 나는 복음주의가 서구 기독교의 미래를 여는 열쇠를 쥐고 있다고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_들어가는 말 중에서


복음주의자들은 대체로 자신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복음주의가 과거에 어떤 난관을 헤쳐 왔고 어떤 승리를 거뒀으며 어떤 패배를 당했는지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그들보다 앞서 살았고 지금 그들이 걷고 있는 길을 예비했던 기라성 같은 저술가들, 사상가들, 전도자들, 목회자들, 그리고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런 역사를 모르기에 그들은 1920년대와 1930년대 초에 복음주의 운동을 거의 소멸시킬 뻔했던 근본주의 논쟁 같은 과거의 실수를 자주 되풀이하려 한다. 자신의 역사를 아는 것은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고 다가올 미래를 맞이하는 방법이다. 우디 앨런의 삐딱한 표현처럼, “역사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아무도 과거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말이다.” 복음주의가 서구 교회뿐 아니라 그 경계를 넘어 전 세계로 확장되어감에 따라,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쇠퇴일로에 빠져들게 할 치명적인 실수를 범할 가능성 또한 더욱 커지고 있다. 과거의 오류를 반복하는 새로운 세대의 복음주의자들의 무지로 인해 복음주의가 그동안 어렵게 얻어 냈던 승리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실수를 방지하자는 뜻만은 아니다. 역사를 앎으로써 우리는 복음주의의 매력을 이해하게 되고, 복음주의가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처럼 강력한 호소력을 지니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젊은 복음주의자들은 대부분 어떻게 세계 기독교에서 복음주의가 주요 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복음주의가 항상 지금 같은 모습이었으리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역사를 배우고 아는 것은 기독교의 미래에서 복음주의가 확고한 자리를 계속 유지하도록 해 주는 방법이다.
_1장 복음주의 르네상스 중에서


현대 복음주의 운동 내에서 이 세 가지 지류가 하나로 합쳐져 큰 물줄기를 형성했지만, 세 흐름의 합류가 때로 소용돌이와 격류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는 사실 또한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거대한 강줄기들이 한데 어울려 폭포를 이루듯, 합류는 긴장과 분열을 초래하기도 한다. 합류로 더 큰 세력을 이루기도 하지만, 복음주의 안에서 현저하게 나타나는 수많은 불일치와 논쟁처럼 혼돈을 더욱 가중시키기도 한다. 복음주의에 내재해 있는 이런 신학적이고 영적인 긴장은 복음주의가 처해 있는 문화적 맥락을 포함한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더욱 심화된다.


이런 문화적 긴장 관계의 기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비록 복음주의가 유럽의 후기 르네상스, 특히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에 그 기원을 두고 있지만, 복음주의가 하나의 강력한 세력이 된 것은 영국과 북미에서였다. 이러한 발전을 가능하게 한 주된 요인은 17세기 초 영국과 북미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얻고 있던 청교도 운동의 성장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청교도 운동은 칼뱅과 그 추종자들로부터 기인한 개혁파 전통의 지적 엄밀성을 강조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체험을 강조했다는 점에서(이런 체험의 강조는 여러 면에서 경건주의의 출현을 예고했다) 특히 흥미롭고 중요하다. 찰스 1세의 억압적인 종교정책으로 영국에서 강제로 쫓겨난 일부 청교도들이 식민지 미국에 정착했고, 이로 인해 미국은 곧 청교도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결과 복음주의는 주로 영어권에서 출현하고 발전하게 되었다.


한동안 복음주의는 북미와 영국 같은 특정한 지리적·문화적 상황에 국한되어 적응해 왔기에 문화적 다양성의 문제가 복음주의 안에서 중요하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거칠게 말하면, 복음주의자들은 거의 모두가 백인이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복음주의가 아시아와 아프리카 문화권으로 확산되고 미국 안에서는 흑인 구성원들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문화적 이슈와 관련된 차이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복음을 각 문화권에 맞게 적용하는 문제가 전 세계 복음주의 운동 내에서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미국과 동아시아 간의 차이, 영국과 동아프리카 간의 차이 등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차이점들은 복음 자체에 대한 근본적 차이가 아니라, 뿌리 깊은 문화적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이 차이점들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된다.
차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복음주의의 정체성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유용한 용어를 빌리자면, 복음주의의 다양한 형태와 스타일 속에서 우리는 분명한 “가족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_

복음주의는 서로 연결된 여섯 가지의 지배적 확신에 기초해 있는데, 각각의 확신은 성경에 근거한 매우 중요한 진리로 간주된다. 교리를 일련의 객관적 진리라고 정의한다면, 이 여섯 가지 확신은 분명 “교리적”인 것은 아니다. 이 여섯 가지 확신은 신자가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 구속적이고 경험적인 만남을 갖는 방식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실존적”이다.


여섯 가지 기본 확신이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원천이자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침으로서 성경이 갖는 최고의 권위.
2.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시자 주님이시며 죄인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
3. 성령의 주되심.
4. 인격적 회심의 필요성.
5. 개별 그리스도인과 교회 전체의 복음전도의 우선성.
6. 영적 양육, 친교, 성장을 위한 기독교 공동체의 중요성.


이 여섯 가지를 제외한 다른 문제들은 관용과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다루어야 할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다양성 자체는 신약성경에 기반을 둔 것으로, 책임 있는 복음주의는 성경이 말하지 않고 여러 각도로 접근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규범화하기를 거부해 왔다. 이는 교회의 본질에 대한 복음주의 내의 다양한 입장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신약성경이 제시하는 교회의 모델과 교회에 관한 진술의 복잡함을 인식함으로써 복음주의는 교회 질서에 대한 구체적 규범뿐 아니라 교단 내의 교리적 순수성이나 다양성 같은 좀더 일반적인 문제에 관해서 다양한 견해를 가질 수 있었다.
위에서 제시한 여섯 가지 확신은 C. S. 루이스(Lewis)가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라고 명명한, 즉 역사를 통해 내려온 기독교회의 공통 신앙과 많은 점에서 일치한다. 복음주의자들은 복음주의가 그 핵심에 있어서 역사적인 기독교 정통 신앙이라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다양한 도전에 맞서 정통 신앙을 수호하려는 기독교회 내의 많은 이들과 복음주의자들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유대관계가 형성된다. 바로 이것이 복음주의자들이 주류 교단 내에서 “중심 세력을 재구성하려는” 현재의 시도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이유다.
_2장 복음주의의 특징


복음주의는 정통 기독교다
복음주의는 역사적 기독교다. 복음주의의 믿음은 역사를 통해 내려온 기독교회의 중심 교리와 일치한다. 여기에는 교부 시대의 가장 중요한 두 교리,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신인 “양성론”과 “삼위일체론”이 포함된다. 이 교리들의 성경적 기초, 신학적 정당성, 영적 적실성 등을 강력히 변호하고 있다는 점에서 복음주의는 현대 세계에서 역사적이고 정통적인 기독교의 표준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할 자격이 있다. 북미의 주류 교단에 속한 많은 헌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발견하고 분노하듯이 이 역사적 교리에 대한 주류 교단들의 헌신은 종종 마음을 다한 헌신이 아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주류 교단을 떠나 명백히 복음주의적인 교단을 선택하였고 주류 교단 내 복음주의적 성향이 강화되었다.
남침례교단의 지속적인 발전과 영국 성공회 내 복음주의의 성장은 이런 흐름의 실례를 제공한다. 또 다른 결과는 복음주의 교회들이 주류 교단에서 이탈해 독자적인 교단을 형성하는 것이다. 1973년 12월 미국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의 형성이 좋은 예다. 미국장로교회의 결성은 당시 주류 장로 교단 내에서 자유주의 신학이 급속하게 확장되는 데 대한 각성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 후로 미국장로교회의 교세는 4,000명에서 217,000명으로 늘어났고, 여전히 증가 추세에 있다. 사람들은 자유주의로부터 당당히 걸어 나와 정통 기독교로 향함으로써 자신의 선택을 자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만일 그들이 주류 교단 안에 머물고 있다면, 그것은 그 교단을 정통 기독교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소망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이런 접근이 1960년대 영국 성공회에서 채택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주류 교단의 많은 지도자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사이에 신학 교육을 받았으며, 그들 중 일부는 당시 지배적이었던 자유주의 신학의 흐름을 다소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그들은 그러한 자유주의 신학이 이제는 학계에서 과거의 유물로 간주되고, 끊임없이 세속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교회를 지탱해 낼 능력이 없음을 아직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모든 것이 장밋빛으로 빛나던 1960년대의 낙관주의, 시대에 맞지 않은 자유주의 이상에 여전히 빠져 있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신약학자 로버트 모건(Robert Morgan)은 이를 제대로 지적한 많은 저자들 중 한 사람이다. “자유주의 신학이 가지고 있는 최선의 통찰조차…급진적으로 세속화되어 가는 사회에서는 작은 교회 하나 양육하기도 벅차다.” 자유주의 신학은 생각을 자극할 수는 있지만 교회를 유지하고 지탱하지는 못한다.
_3장 복음주의의 매력 중에서


정체성을 찾아서
한 가지 문제를 더 다루어야 한다. 복음주의가 이전에 가졌던 복음주의 정의에 대한 엄격함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개 “엄격한 것이 옳은 것”이라는 가정에 기초해 이런 주장을 한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근거가 약하다. 과거에 복음주의가 가졌던 엄격함은 복음주의가 교회와 사회 안에서 불안정한 위치에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1900년대 심지어 1950년대 복음주의의 모습이 2000년대의 복음주의의 모습을 규정해야 한다는 가정은 잘못된 것이다. 복음주의의 다양화에 불평을 토로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 상황이 정말로 현재 복음주의 운동의 정체성이 흐려져 있음을 반영하는 것인지, 아니면 과거 복음주의자들의 적실성이 떨어지는 엄격함을 투영한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자문해 봐야 한다. 현재 복음주의 운동의 정체성이 흐려져 있는 것이 문제라는 그들의 가정이 결코 유일한 선택은 아니다.
어떤 운동의 정체성을 규정하려고 할 때, 그 정체성 규정의 전반적인 방식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또는 선택된 정체성의 내용이 그 전통에 부합하는지를 분명히 하지 않은 채 정체성을 규정하려는 유혹이 언제나 있어 왔다. 복음주의만의 독특한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고 느낄 때, 복음주의는 지나치게 정밀하게, 부정적으로, 혹은 상대적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려는 실제적인 위험을 가지고 있다. 앞 장에서 나는 여섯 가지 일반적 확신에 기초해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자연스러운 친밀감이 있음을 지적했다. 만일 이 여섯 가지에 몇 가지를 더 추가한다면, 복음주의가 실제로 무엇인지에 대한 부당하게 좁은 이해로 인해 많은 복음주의자들을 소외시키거나 배제시킬 위험이 생긴다. 복음주의에 대한 정의가 엄격할수록, 사실상 복음주의자인 많은 사람들이 부적절하게 제외될 것이다. 의도는 선하지만 역사적 지식이 없는 열심파 복음주의자들이 제시하는 “복음주의”에 대한 좀더 경험적인 정의는 심지어 마르틴 루터, 장 칼뱅, 조나단 에드워즈 같은 인물들조차 복음주의에서 제외해 버릴 것이다.
_4장 복음주의 확장과 위기 중에서



감사의 말
들어가는 말


1장 복음주의 르네상스
2장 복음주의의 특징
3장 복음주의의 매력
4장 복음주의 확장과 위기
5장 복음주의적 영성 추구
6장 복음주의의 그늘
7장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


해설



복음주의에서 기독교의 미래를 본 저자는 복음주의의 지적 진실성 및 정합성, 영성의 심화를 촉구하면서 복음주의를 좀먹는 교파적 독단성 및 편협성을 꼬집고 그 대안으로 초교파적・통합적 구도 형성을 제시한다. 복음주의 운동에 내재해 있는 이러한 쟁점들은 미국 복음주의의 유사품들로 넘쳐나는 한국 교회에 시급히 요구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정확히 이 점에서 맥그래스의 우려와 염원은 우리에게 매우 유익하다. 이 책이 저술된 이후의 세계 복음주의의 전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복음주의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회고와 미래에 대한 그의 전망에는 숙고해야 할 통찰이 여전히 많다. 우리가 받은 복음의 유산과 교회의 생명력을 확인해 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그와 함께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 보길 신중히 그리고 적극 권한다.
_김재영 미국 L.A. 국제신학교 교수


복음주의의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며 기독교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이 책은 1970년대 한국 교회의 성장과 1980년대 한국 교회의 사회 참여 운동의 기원 및 동력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해 준다. 나아가 기독교의 사회적 영향력을 기대하는 우리나라 복음주의자들을 격려한다. 그러나 그 미래인 오늘,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는 표류 중이다. 이제는 맥그래스의 통찰력 있는 지적을 꼼꼼히 살피며 한국 기독교의 미래를 다시 가늠해 볼 때가 되었다.
_이강일 IVF한국복음주의운동연구소 소장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불확실해하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이때, 이 책에 담긴 저자의 주장은 대담하고 신선하며 시의적절할 뿐 아니라 실천적이다. 선도적 복음주의 사상가가 쓴 이 탁월한 책은 복음주의의 약속과 위험 모두를 잘 짚어 냈다.
_오스 기니스 『소명』 저자


시종일관 혜안이 번뜩이는 이 책에서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성년이 된 복음주의를 깔끔하게 정돈하여 소개해 준다. 그는 어떤 기독교 운동보다 복음주의가 세계 기독교의 미래를 형성할 것임을 천명한다. 이 책은 하나님의 백성을 안내해 줄 지표이자 현대 복음주의 바깥뿐 아니라 안에서 그 명성에 먹칠을 하는 혼란스러움을 산산조각 낼 지뢰다.
_제임스 패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저자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복음주의의 현재 상태와 미래의 잠재력 등 복음주의 현상에 대한 광범위하고 충실한 정보가 담긴 평가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복음주의의 역사, 신학, 분석, 성찰, 도전과 응전이 담긴 이 책은 복음주의자든 아니든 모두가 읽어야 한다. 내가 이 책의 솔직함과 지혜와 열정에 사로잡혔듯이 다른 모든 이들도 그럴 것이다.
_존 스토트 『그리스도의 십자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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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 소개

존 스토트, 제임스 패커의 뒤를 잇는 복음주의 기독교 진영의 대표 신학자. 옥스퍼드대학교 과학과 종교 ‘안드레아스 이드레오스’ 석좌교수이자 과학과 종교를 위한 이안램지센터 책임자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자연과학, 지성사, 기독교신학 분야로 각각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과학과 기독교 신학의 상호작용에 관해 광범위하게 저술했다. 그는 그레셤 신학 교수이기도 한데, 이 자리는 당대의 주요 사안에 대한 신학의 공적 참여를 촉진하고자 1597년에 개설된 런던시의 공공 교수직이다.
맥그래스는 1953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철저하게 무신론을 견지하며 자연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사귄 그리스도인 친구들의 삶에 감화를 받아 기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진정한 기독교의 본질을 깨닫고 회심했다. C. S. 루이스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으며 《C. S. 루이스》(복있는사람)를 집필하기도 했다. 다른 저서로는 《도킨스의 신》(SFC출판부), 《인간, 그레이트 미스터리》, 《신학이란 무엇인가》,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평생 가는 길》(이상 복있는사람),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 《복음주의와 기독교적 지성》,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 《삶을 위한 신학》, 《회의에서 확신으로》(이상 IVP), 《한 권으로 읽는 기독교》, 《십자가로 돌아가라》(이상 생명의말씀사), 《우주의 의미를 찾아서》(새물결플러스),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기독교 변증》,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이상 국제제자훈련원), 《하나님의 칭의론》(CLC), 《기독교의 역사》, 《에이딘 연대기》(이상 포이에마), 《도킨스의 망상》(살림) 등이 있다.
alistermcgrath.weeb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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