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 박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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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미학을 넘나드는 이어령의 시선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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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디자인하우스화살표
저자 이어령  화살표
출간일 2022-03-02
ISBN 9788970417561
쪽수 280
크기 170 * 220

상세정보





한국 문화의 심층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암호를 찾아 나서는 탐험


이어령은 “우리가 사용해온 물건들은 서명이 없는 디자인이며 조각이며 책”이라고 적었다. 우리의 일상과 함께해온 물건 하나하나에 한국인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물의 실용적인 면과 미적인 면만 들여다봐서는 이를 제대로 알 수 없다. 한국 문화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려면 사물 속에 박힌 함축적인 상징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 작업은 마치 비밀지도를 들고 보물을 찾아가는 모험과 같다.


보물을 찾기 위해 멀고 험한 여정은 필요치 않다. 쉽게 닿을 수 없는 진귀하고 호화로운 양반의 물건이 아닌 가위, 골무, 낫, 짚신, 바구니, 화로와 같이 흔하고 평범해서 눈여겨보지 않았던 민중의 농기구나 생활필수품에 보물이 묻혀 있는 까닭이다. 탐색 지점을 확인한 저자는 이어서 도구의 만듦새와 쓰임새, 만들어진 연원 등을 살펴보며 보물을 둘러싼 층위를 파헤쳐나간다. 이때 단순히 사물의 껍질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뒤집어보고, 들춰보고, 견주어보는 과정을 통해 여러 켜마다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는 의미를 굴착한다. 한 켜를 들어내어 우리가 지나치고 간과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하고, 다른 켜를 뒤집어보며 단점이라고 여겼던 부분에서 의미를 찾기도 한다. 달걀을 반만 싸서 반은 밖으로 드러낸 달걀꾸러미에서는 짚과 달걀이라는 대조와 조화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대충대충 짜서 틈이 벌어지는 한옥의 문에서는 문풍지 소리의 정취를 즐기는 한국인의 마음을 찾아낸다. 또한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전복적인 기능을 알아내고, 동서양 문화를 측량하고 견주어봄으로써 숨겨진 눈금을 밝혀내기도 한다. 날이 안으로 향한 낫과 호미는 풀을 베는 기능을 넘어서서 때론 자기를 향한 경고의 칼날이 되고, 수저는 개인주의의 산물인 서양의 포크, 나이프와 대비되며 한국의 소통 문화를 대표하는 기물이 된다.


융합, 생명, 융통성…
문화 유전자 지도를 통해 읽는 한국 문화의 본질

저자의 생각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 문화에 관한 몇 가지 핵심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 융합과 생명, 융통성 등이 그것이다. 융합은 대립과 모순을 중화시키고, 그 과정에서 아름다움이 태어난다. 바구니는 노동과 놀이를 통합한 도구이고, 장독대는 볕과 바람이 들되 은밀한 곳이어야만 하는 조화의 공간이다. 키는 곡식을 모으는 동시에 쭉정이를 날리는 모순적인 기능을 융합함으로써 아름다운 모양새를 갖추고, 베갯모에서는 십장생이 서로 어우러지는 화합의 세계가 펼쳐진다.


생명은 투쟁과 정복이 아닌 성심과 포용의 소산물이다. 한국 논길의 구불구불한 모양은 지극한 정성이 필요한 벼농사가 만들어내는 생명적인 곡선이고, 종소리는 인간의 생명을 구원하고 영혼을 씻어준다.


융통성은 인공적인 기계성의 대척점에 서 있다. 정확한 치수를 재지 않고 넉넉하게 만든 한복 바지와 치마는 몸에 맞춰 입는 신축자재성이 특징적이고, 보자기는 쓰임에 따라 가방이 되기도 하고 두건이나 끈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저자는 뛰어난 통찰력을 발휘해 한국 문화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


읽는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이어령 특유의 시적 직관과 상상력

미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글은 이어령 글쓰기의 장점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저자가 펼쳐내는 한국 문화론은 방대한 지식에 특유의 직관과 감성, 상상력이 더해져 흡인력을 갖는다. 고봉의 원추형은 정이라는 마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빛이 퍼지지 않게 사방을 막은 초롱은 어둠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밤의 어둠을 즐기기 위한 조명기구다.


국어국문학자인 저자는 언어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문화 코드를 해독해나가기도 한다. 한국인은 고립무원의 상태를 “끈이 떨어졌다”라고 말하는데, 이를 통해 한국인의 인간관을 맺고 풀고 잇는 끈의 관계로 풀어낸다. 또한 한국어에는 내일이라는 말이 없지만 모레와 글피라는 말이 있는 것에서 눈앞의 현실이 아닌 먼 미래를 새기며 살아가는 한국인의 미륵신앙과 연관 짓는다. 이러한 자유로운 상상력은 이성적인 사유를 뛰어넘어 현상과 의미를 자연스럽게 결합한다.
저자가 이끄는 대로 사물과 풍속의 세계를 탐험하다 보면 우리의 심상은 과거의 들판으로, 초가집 지붕 위로, 겨울밤 화롯가로, 꿈과 몽상의 자리로 옮겨간다. 잊혀갔던 것들이 되살아나고, 평범한 사물이 한국인의 혼과 마음이 담긴 특별한 물건이 된다. 더 이상 전통문화는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과 디자인이 태어나는 요람이 된다.



책속에서
태초에 사람들은 하늘에 흩어져 있는 별들을 그냥 바라보지는 않았다. 북두칠성처럼 별과 별을 이어서 하나의 별자리를 만들어냈다. 별을 만들어낸 것은 하늘이지만 별자리를 만들어낸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자기로부터 몇천 광년 떨어진 별빛을 가지고도 별자리를 그려낸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와 가장 가까운 물건들, 일상 속에서 자기와 함께 생활해온 물건들에 대해 무관심할 수 있었겠는가. 밥 먹을 때 쓰는 젓가락, 옷 입을 때 매는 옷고름 자락 그리고 누워서 바라보는 대청마루의 서까래… 한국인들이 사용해온 물건들 하나하나에는 한국인의 마음을 그려낸 별자리가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것들은 서명되어 있지 않은 디자인이며 조각이며 책이다. 이 책은 바로 그 한국의 영상과 한국인의 생각의 별자리를 읽으려는 욕망 그리고 그 읽기의 새로운 실험에서 탄생하였다.
― 들어가며 


가위는 무엇을 자르기 위해 고안된 도구이기 때문에 자연히 악역 노릇을 해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랑받지 못한 가위의 이미지를 역전시켜 그 일탈의 시적 효과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한국의 엿장수 가위다. 우선 그 생김새를 보면 끝이 무디고 날이 어긋나 아무것도 잘라낼 수 없게 되어 있다. 그야말로 가위에서 가위의 기능을 가위질해버린 것이 엿장수 가위다. 엿장수 가위는 자르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내는 음향효과에 그 기능을 두었기 때문이다. 절단 작용을 청각 작용으로 전환시킨 순간 가위는 악역에서 정겨운 주역으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엿장수 아저씨의 가위 소리는 늘 현실을 넘어선 꿈결 속에서 들려온다. 그리고 그 가위는 무엇이 잘리는 공포, 프로이트가 말하는 거세 콤플렉스의 불안이 아니라 오히려 듬뿍 덤을 주는 훈훈한 인정을 느끼게 한다.
― 가위: 엿장수 가위의 작은 기적 


서양의 침대는 사람이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관계없이 한 자리를 차지한다. 사람이 일어나 낮에 활동하고 있을 때에도 침대는 저 혼자 한 공간을 차지하고 누워 있다. 인간과 관계없이 도구가 독립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잘 때는 펴고 일어나면 개키는 침대, 말하자면 사람이 일어나면 침대도 따라 일어나는 것이 바로 한국의 요이며 이불이다. 그러므로 식탁이 놓여 있는 식당, 의자가 놓여 있는 응접실, 침대가 놓여 있는 침실… 우리에겐 이렇게 공간이 분절되어 있지 않다. 즉 이불을 깔면 침실이 되고 밥상을 들여오면 식당이 된다.
― 이불과 방석: 사람과 함께 있는 도구 


청사초롱의 빛은 겸손을 가르쳐준다. 대낮과 경쟁하고 태양빛을 시기하는 빛이 아니라 밤의 어둠을 보기 위해 있는 빛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이 밤에 불을 밝히는 것은 밤을 대낮으로 연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밤을 더욱 밤답게 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으스름한 빛, 어렴풋한 빛, 깁 속에서 번져 나오는 청사초롱의 불빛이 그러한 불빛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냥 밝은 달이 아니라 구름 속에 가린 달빛을 더 좋아한 한국인들은 빛을 싼다. 깁으로, 종이로, 그렇지 않으면 창살 같은 나무로. 청사초롱만이 아니라 모든 한국의 조명기구들은 비과학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비과학이 아니라 과학 이상의 것을 추구하려는 마음의 소산이다. 몽롱한 빛, 대낮의 빛과는 다른 밤의 빛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등롱이 있는 것이다.
― 초롱: 밤의 빛 


한국의 화로는 역설적이다. 그것은 식기 위해서 있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라는 시구에서도 읽을 수 있듯이 화로는 불이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재가 식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데 그 특징이 있다. 뜨거웠던 불덩어리가 싸늘한 재가 되어가는 과정, 화로의 참된 아름다움은 불꽃보다는 그 재 속에 있다. 한국의 화로는 근본적으로 불을 담아도 비어 있는 형태, 재의 형태를 모방하게 된다. 그러므로 미당 서정주의 시를 빌어 말하자면 화로의 아름다움은 봄의 아지랑이가 아니라 가을의 무서리, 꽃으로 치면 복숭아꽃이 아니라 국화꽃, 여인으로 치면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 그리고 새로 치면 날쌘 제비나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매가 아니라 천년을 사는 학의 비상이다. 그러기 때문에 화로는 할아버지 방이나 할머니 곁에 있을 때 가장 잘 어울린다. 할아버지의 잠든 모습은 화롯가에서 가장 평화롭다.
― 화로: 불들의 납골당 


우리는 사물을 보지 않는다. 본다기보다 사물 위를 그냥 스쳐 지나간다. 얼음판을 지치듯이 미끄러져 가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물의 형태나 빛깔 그리고 그것들이 끝없이 우리를 향해 말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듣지 못한다. 만약 우리가 시선을 멈추고 어떤 물건이든 단 1분 동안만이라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들은 어김없이 먼지를 털고 고개를 치켜들 것이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순간처럼 전연 낯선 얼굴로 우리 앞에 다가설 것이다. 모든 도구들은 필요한 물건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감동을 나누어주는 조형물이 되어 조용히 내 앞에 와 앉는다.
― 나오며 




목차





들어가며


가위_엿장수 가위의 작은 기적 | 갓_머리의 언어 | 거문고_누워 있는 악기 | 고봉_무한한 마음을 담는 기법 | 골무_손가락의 투구 | 나전칠기_어둠 속에 빛을 상감하는 법 | 낫과 호미_자기로 향한 칼날 | 논길_팽창주의를 거부하는 선 | 다듬이_악기가 된 평화로운 곤봉 | 달걀꾸러미_포장 문화의 원형 | 담_ 일인칭 복수의 문화 | 담뱃대_노인들의 천국 | 돗자리_하늘을 나는 융단 | 뒤주_집안의 작은 신전 | 떡_마음의 지층 | ㄹ_통합, 그리고 연속의 무늬 | 매듭_맺고 푸는 선의 드라마 | 맷돌_분쇄의 기술 | 무덤_죽음의 순서 | 문_문풍지 문화 | 물레방아_환상의 바퀴 | 미륵_50억 년의 미소 | 바구니_뽕도 따고 님도 보고 | 바지_치수 없는 옷 | 박_초가지붕 위의 마술사 | 버선_오이씨가 된 발 | 베갯모_우주와 사랑의 꿈 | 병풍_움직이는 벽 | 보자기_탈근대화의 발상 | 부채_계절을 초월한 아름다움 | 붓_정신의 흔적 | 사물놀이_우주와 사계절의 소리 | 상_억제와 해방의 미각 | 서까래_안과 바깥의 매개 공간 | 수저_짝의 사상 | 신발_문화의 출발점 | 씨름_긴장 속의 탈출구 | 연_빈 구멍의 비밀 | 엽전_우주를 담은 돈 | 윷놀이_우연의 놀이 | 이불과 방석_사람과 함께 있는 도구 | 장롱_심연의 밑바닥 | 장독대_가정의 제단 | 장승_수직과 짝을 염원하는 삶 | 정자_에콜로지의 건축학 | 종_여운을 만들어내는 정신 | 지게_균형과 조화의 운반체 | 창호지_나무의 가장 순수한 넋 | 처마_욕망의 건축학 | 초롱_밤의 빛 | 치마_감싸는 미학 | 칼_무딘 칼의 철학 | 키_이상한 돛을 지닌 배 | 탈_삶의 볼록거울 | 태권도_허공에 쓰는 붓글씨 | 태극_가장 잘 구르는 수레바퀴 | 팔만대장경_칼을 이긴 인쇄 문화 | 풍경_대기를 헤엄치는 물고기 소리 | 한글_기호론적 우주 | 한약_생명을 위안하는 상형문자 | 항아리_불의 자궁에서 꺼낸 육체 | 호랑이_웃음으로 바뀌는 폭력 | 화로_불들의 납골당

나오며
항목풀이
사진 출처 · 이 책을 만드는 데 도움 주신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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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소개



1933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능소(凌宵)이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문학평론가이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이화여대 교수, 20대부터 《서울신문》 《한국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 신문사 논설위원, 88올림픽 개폐회식 기획위원, 초대 문화부장관, 새천년준비위원장, 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2021년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예술 발전 유공자로 선정되어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대표 저서로 논문·평론 《저항의 문학》 《공간의 기호학》 《한국인 이야기》 《생명이 자본이다》 《시 다시 읽기》, 에세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디지로그》 《젊음의 탄생》 《지성에서 영성으로》 등 수십 권, 일본어 저서 《축소지향의 일본인》 《하이쿠로 일본을 읽다》 외, 소설 《장군의 수염》 《환각의 다리》와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날게 하소서》를 펴냈으며, 희곡과 시나리오 《기적을 파는 백화점》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 등을 집필했다.
말년에 오랜 지적 탐구를 집대성한 ‘한국인 이야기’(전4권)와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전6권) 시리즈를 집필해 왔으며, 방대한 유고를 남기고 2022년 2월 26일 별세했다.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너 어디에서 왔니》 《너 누구니》 《너 어떻게 살래》 《너 어디로 가니》가 출간되었고,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별의 지도》가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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