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고아들의 아버지 김정구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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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고아들의 아버지 김정구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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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아침향기화살표
저자 김정구  화살표
출간일 2021-10-08
ISBN 9791188521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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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책 소개>


「인도 고아들의 아버지」는 작가 김정구 선교사의 30년 동안의 인도사역을 정리한 자서전적인 책이다. 김정구 선교사는 30년동안 인도에서 사역을 하면서 인도도마선교센터를 설립하였으며, ‘사랑의 집’인 고아원을 설립하여 고아들을 입양하고 양육하여 키우는 것으로 사역을 시작하였다. 시작은 미미했고 더딘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김정구 선교사에게 기름부으시고 축복하여서 30년 동안 10개의 고아원을 세웠고, 그 고아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도마사립 초.중.고등학교를 세웠다. 이어서 신학교와 대학교까지 세워 고아원에 입소한 아이들이 천국의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고아원 출신으로 목회자가 된 사람이 1,000여명이 넘으며 그들을 통하여 500개의 가정교회가 세웠졌고 161개 교회가 설립되었다. 한센인센터를 설립하여 병걸리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았으며 지역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힘써 공급해 주었다. 고아원 아이들은 김정구 선교사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지역 주민들도 김정구 선교사를 아버지라고 부른다. ‘내가 죽어야 주님이 사신다’라는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사역에 임한 결과 많은 사람들이 김정구 선교사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김정구 선교사는 30여년 동안 부어주신 하나님의 깊은 은혜와 축복에 감사하면서 이 책을 출판하였다. 이 책이 그 동안에 기도해 주시고 후원해 주신 분들에게는 은혜의 선교보고가 되고, 한국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선교의 새바람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인도 고아들의 아버지, 김정구 선교사』


둥둥 딱딱 둥둥 딱딱 아~유 아~유~~~

아~~우~~우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온 람바니 족속들이 들판에서 그날의 피로를 풀기 위해 불을 피워놓고 춤을 추고 있다. 전등불도 없이 달빛 아래서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나와 춤을 춘다.

아~~우~~우

밤마다 들개들이 무리 지어 여기 저기서 운다.

늦은 밤에는 여우들도 지나가고, 뱀들은 셀 수 없이 많은 곳이다.

1994년 김 선교사께서 자리 잡은 시골에는 문명의 혜택으로부터 먼 곳이었다.

짚시들 곧 람바니 족속이 있는 곳에 땅을 구입하여 고아원을 설립하기 위해서였다.

선교사들이 아무도 찾아가지 않고 현지인 마을로부터 먼 곳에 외딴 숲 속 유칼립티스 나무로 가득찬 곳에 자리를 정하고 울창한 나무를 베어내고 코코낫 잎으로 엮어 지붕을 만든 초가집 고아원을 만들었다.그 곳에서부터 고아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들은 극빈자들의 자녀와 편모 편부의 자녀들이 모였다.

또 아무도 연고가 없는 미혼모의 자녀들도 있다. 또 극심한 가난을 못 이겨 자살한 이들의 자녀들도 모였다.이 갈 곳 없는 어린이를 모아서 성 도마 학교를 만들어 이 어린이들을 교육 시켰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교육 시켰다. 그리고 성 도마 신학교를 설립하여 신학교 교육을 하고 교회 개척을 하게하였다. 인도 전 지역에서 몰려든 고아들이 이곳에서 영육간에 교육을 받고 여기 저기서 전도자로 나가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교회를 개척한 곳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십자가를 세웠다.

수많은 목회자를 길러내고, 예배당 건축을 하고, 대학을 설립하고 국제 학교까지 설립하였다. 그리고 남달리 김 선교사는 고아들에게 한국어를 교육하여 이들이 성장하니 한국어에 능통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회사가 인도에 진출하게 되자

여기 저기서 통역사로 일하는 직책을 갖고 일하기 시작했다.

김 선교사가 선교하던 선교지의 범위는 카르나타카주, 타밀나두주, 안드라프라데시주 등 3개주를 오고 가며 교회 설립하는데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다. (한 개 주가 한국보다 땅도 크며 인구도 더 많음) 김 선교사는 영혼 구원을 목적으로 예배당 가운데는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도하자” 라는 표어를 써서 기도와 전도를 강요한 선교사였다.

힌두교로 가득 찬 이 인도 땅, 우상 숭배로 가득 찬 이 인도 땅, 골목마다 하누만(손오공)의 우상이 있고, 뱀들의 형상들을 나무 아래 세워놓고, 마을 입구마다 링가(남성근)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이들에게 절하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담대하게 들어가서 터를 정하고 십자가를 세운 교회와 고아원을 세우니 현지 텃세를 부리는 마을 청년들의 핍박과 행패가 무척 심했고, 도둑이 끈임 없이 고아원을 드나들었다. 핍박하는 이들에게 우물을 파서 물을 주었고, 의료 선교를 끈임 없이 하였다. 그래도 깡패들은 여전히 협박을 하며 달려 들었다.

그때마다 김 선교사는 “내가 죽어야 주님께서 산다.” 라는 다짐을 하며 깡패들을 가슴으로 끌어 안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을 가슴에 안고 급기야는 마을 촌장들도 김 선교사 앞에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그때부터 모든 마을 사람들이 김 선교사를 이렇게 불렀다.“아바지(아버지) 아바지(아버지) 김 아바지”

물론 인도 목회자들이 다 훌륭한 것은 아니다. 생계 목적으로 목회자가 된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김 선교사에게는 목회자의 모습으로 와서 겸손을 배우지 않고 김 선교사를 배반하고 물질을 탐하는 현지 목회자들도 있었다. 그들에게도 김 선교사는 “우리 죽어서 천국에는 같이 가야 한다.” 타이르고 권면을 하였다.

선교지에서의 하나님의 심판은 무서웠다. 선교사를 대적하는 목회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저들의 목숨을 거두어 가시는 것을 여럿 보았다.

김 선교사는 한 세대에 수많은 일을 하여 잃어 버린 영혼을 찾는데 최선을 다했다.

한 사람 충성된 하나님의 선교사가 이처럼 큰 일을 하며 영혼 구원에 최선을

다하는 일이야 말로 우리 모두가 본 받아야 할 일이다.


<책 속으로>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해방이 된 후 한국으로 오게 되었으나 6.25 전쟁으로 현재 김해공항이 있는 덕두로 피난을 오게 되었다. 전쟁으로 모든 것을 다 잃고 가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보국대로 차출되었다. 우리 집은 이학윤 장로님이 조그마한 방 한 칸을 주셔서 그곳에서 지냈다. 너무 가난하여 초등학교 2학년 때는 등록금을 낼 수 없어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다. 어린 몸으로 남의 집에 심부름 하고 이발소에서 손님들의 머리를 감아주며 겨우 겨우 살아갔다. 미군이 쓰레기통에 버린 음식을 주워서 물에 씻어 꿀꿀이 죽을 만들어 연명했다. 어린 나이에 밤에는 교회에 살면서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하나님 앞으로 제가 자라서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을 위하여 학교와 병원, 고아원을 세워서 봉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였다.

01.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던 소년


“울산 성림교회를 개척하면서 앞으로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고아원을 세울 것이라는 목표로 기도하면서 조그마한 집을 빌려서 시작하였다. 개척 후 1년 만에 50명의 성도가 모였다.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학교와 병원을 세우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였으나 나의 힘으로 할 수가 없었다. 마음에 부담을 느끼면서 세계선교를 위하여 헌신하게 되었고 그후 교회가 부흥되어 개척 2년 만에 땅을 사고 2층 예배당을 세울수가 있었고 해외에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하였다. 인도네시아 선교사를 통하여 교회를 건축하였고 그 후에 필리핀에 교회를 개척하고 태국에 사랑의 마을(한센인)을 설립할 때 건축할 수 있도록 대지를 구입하여 주었다.”

02. 울산에서 교회를 개척하다


“인도에 교회를 건축하고 학교를 세우고 고아원을 세우고 병원을 세우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한국에왔지만, 가족을 생각하고 교회를 생각한다면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때 인간적인 생각을 하였다. 교회를 개척한지 17년이었고 교회도 안정되게 부흥되었고 자녀 교육문제도 있었다. 앞으로 4년만 더 있으면 원로목사가 될 수 있고 그러면 안정된 가운데 선교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인도에 갈 것을 미루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도에 대하여 품었던 꿈과 생각은 점차적으로 내 기억속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화재를 통하여 또한 끔직한 교통사고를 통하여 다시한번 인도 선교에 대한 사명을 생각나도록 해 주셨다.”


03. 교회 화재와 교통 사고를 통해 나를 깨우치는 하나님의 경고


“꿈꾸던 인도, 누구도 반겨 주거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척박한 땅, 인도! 온 도시에 쓰레기가 쌓여있고 들개들이 줄을 지어 다니고, 소들이 주인행세를 하며 도로를 누비고 있었다. 거지들이 떼를 지어 구걸하러 다니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 삶이 찌들고 병들어 길가에 쓰러져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살고 있었으며 한 마디로, 소 천국, 개 천국, 거지 천국이 이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곳에서 사역을 시작한다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 자신이 얼마나 무모한 결단을 하고 인도선교에 임하였는지 깨닫게 된다.”


04. 요나처럼 떠밀려 간 인도선교


목차


추천사 1 :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

추천사 2 : 내가 죽어야 주님께서 산다

추천사 3 : 선교지에 나타난 성령행전의 역사

추천사 4 : Praise be to His Holy Name

추천사 5 : A man of God, my father

머리말 :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제1부 :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가는 도마선교센터


01.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던 소년

02. 울산에서 교회를 개척하다

03. 교회화재와 교통사고를 통하여 나를 깨우친 하나님의 경고

04. 요나처럼 떠밀려 간 인도선교

05. 꼬디갈리에서 사역을 시작하다

06. 멈추지 않는 핍팍과 쉼없는 아이들의 기도소리

07. 가장 어렵고 힘들 때 찾아 온 마산 최재욱 집사의 헌금

08. 흰두템플의 힌두신상을 부수는 사건과 도움의 손길

09. 고아원 사역과 한글교육

10. 꿈으로 역사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

11. 한센(나환자)선교 센터를 세워 한센인을 돌보다

12. 도마크리스찬 사립학교를 위한 헌신자들

13. 인디아 장로회 신학교 사역과 건축 후원자들

14. 인디아 장로회 소속 161개 교회와 500개 가정교회가 세워지다

15. 하나님께서 주신 학교 세우는 꿈을 이루어주셨다

16. 인도에서 일어난 몇 가지 어려운 사건들

17. 꼬디갈리센터에서 게르만가람센터로 이전하다

18. 도마크리스찬 사립학교 사역과 기독교 교육의 목표

19. 뜻하지 않은 성대한 팔순 잔칫상을 받았다

20. 코로나 덕분에 안식년으로 다시 인도에 갈 준비를 하며


제2부 : 도마선교센터 동역자와 증인들


1.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조원조 사모-

2. Moses Testimony, 아버지는 인도를 위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모세 목사-

3. 밑거름선교회를 통하여 선교지를 섬깁니다. -배동석 장로-

4. 그는 오직 인도선교사입니다. -심송숙 사모-

5. 인도의 영혼들을 사랑하는 선교사의 발자취 –이현정 목사-

6. 도마선교센터 조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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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구 소개

‘내가 죽어야 주님께서 산다’는 일사 각오의 정신으로 53세의 늦은 나이에 인도선교사로 헌신하였다. 낮설고 물설은 인도땅에서 가진 것 하나없이 맨 주목으로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사역을 시작하였다. 문명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올리브나무로 초라한 집을 짓고 ‘사랑의 집’이라고 명명한 후에 고아들을 입양하여 양육하는 사역을 시작하였다. 12명의 고아들을 입양하여 시작은 미약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김정구 선교사의 사역을 기름부어 주시고 축복하셨다. 고아원생들은 점점 늘어 났고 30년 동안 10개의 고아원을 설립하여 1,000여명이 넘는 고아들을 키워 목회자로 양성하였다. 고아들이 교육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초.중.고 인도도마사립학교를 설립하였다. 또한 도마신학교를 설립하였고, 도마대학도 설립하였다. 이러한 교육기관을 통하여 고아원에 입소한 아이들이 잘 교육을 받아 훌륭한 사역자로 성장하였다. 그들을 통하여 500개의 가정교회가 세워졌고 161개 교회를 설립할 수 있었다. 한센인 센터를 설립하여 나환자를 돌보고 과부들을 돌아 보는 긍휼사역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김정구 선교사를 장중에 붙들어 사용해 주셨고, 이제는 김정구 선교사의 뒤를 이어 영적자녀들이 김정구 선교사의 사역을 이어 받아 힘차게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사역들을 감당하고 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건물을 세우는 것보다, 사람을 키우고 세우는 일이다. 제자를 만드는 일이다. 세계선교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일평생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영혼 구원의 사역을 위하여 달려온 김정구 선교사는 앞으로 남은 인생도 불꽃처럼 타오르는 모습으로 끝까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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