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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믿음 (예수를 믿는 믿음에서 예수의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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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믿음 (예수를 믿는 믿음에서 예수의 믿음으로)

예수가 믿었고 꿈꾸었고 그가 이루고 싶었던 그의 세계관이 오늘에도 유효한가?

김창호  지음 | 열린서원 | 2018-04-10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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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ISBN 9791195636495
쪽수 288
크기 155*225

이 책이 속한 분야



예수는 당시 유대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 유대인들이 신앙하는 하나님에 대해 살인자, 거짓말쟁이, 마귀라고 통렬하게 지적한다. 예수는 정신계의 혁명가였다.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를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이루고 싶었지만‘나를 따르라’던 예수는 제자들의 욕망을 없애기 위해 그들이 따르던 예수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준다. 그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안내한다.


예수가 믿었고 꿈꾸었고 그가 이루고 싶었던 그의 세계관이 오늘에도 유효한가? 사람들은 그가 꿈꿨던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그를 믿음의 대상으로 삼고 예수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구현코자 한다. 이천 년이 지난 지금 현대인들에게 예수는 숭배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예수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이 책은 예수는 믿음의 대상으로가 아니라 예수가 믿었던 믿음, 곧 예수의 믿음이 토대가 되고 그 바탕 위에서 믿음의 세계를 열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그 때의 예수가 유대인들의 신을 탄핵했듯, 오늘의 예수에 대해 그 때의 예수는 동일한 탄핵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믿음에 대한 새로운 길을 안내한다. 스스로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의 믿음이 신앙인들에게 찾아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흐름의 기조 위에서 성서의 여러 주제들을 본래의 의미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고 답한다. 성서의 원문 텍스트 분석을 중심으로 본문에 대한 영적해석을 진행한다.


독자들은 이 책에 들어 있는 열아홉 개의 주제 속에서 성서에 대한 새롭고도 신비한 해석을 만나게 된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창세기와 종말론’ ‘선악과와 에스카토스(종말)’‘속히 사라져야할 신포도 속담’ 등에서 원죄론과 칭의론의 오류가 얼마나 깊은지를 알 수 있다. ‘역사적 시간과 존재적 시간’에서는 두 개의 시간 개념인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를 다루는데, 예컨대 ‘카이로스’의 시간 개념을 연대기적 시간개념인 ‘크로노스’와 혼동하면서 ‘우주 종말론’과 같은 터무니없는 해석이 반복되고 있고 그런 토양에서 종말론의 광란은 언제든 되풀이 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동정녀 탄생의 이야기가 시대착오적인 서술방식이 아니라 그것의 영적인 의미, 궁극적으로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다루고 있다. 비록 신화적 기법으로 서술된 이야기지만 독자는 이 이야기가 전해주려는 영적 메시지를 제대로 포착해야 한다. 거기서 진정한 탈신화가 무엇인지를 동정녀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알 수 있다.


예수를 우상의 자리에서 해방시키고 본래의 예수 정신과 그의 믿음이 신앙인들의 가슴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예수를 믿으려는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예수의 믿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예수의 믿음에 동참하게 된다면, 그 믿음으로 비로소 믿음에 이르게 되는 길이 열린다. 성서는 인생을 처음 사람(아브람의 때)과 두 번째 사람(아브라함의 때)으로 구분한다. 처음 사람(아브람)의 시각으로 성서 읽기를 계속한다면 성서의 진의를 읽어낼 수 없다. 두 번째 사람인 아브라함의 시각으로 성서를 읽게 되면 비로소 더 많은 것들이 보이고 더 많은 것들이 읽힌다. 이 책은 ‘다른 예수, 다른 그리스도’가 아닌 ‘본래의 예수와 그리스도’에 대해 깊이 천착한다.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성서에 대한 바른 이해를 구하는 이들에게 권장할 만한 책이다.


책 속으로


1. 예수는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해놓고, 삶의 터전을 버리게 해놓고, 배와 그물을 버리게 하고, 직업을 버리게 하고서 하는 말이 너희는 나를 따를 수 없단다. 그리고 제자들이 따르던 그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버린다. 어떻게든 살아서 그를 따르던 제자들에게 애초부터 부른 목적대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의 죽음은 그를 믿고 따르던 제자들을 배반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것 아닌가. - 중략 - 따라서 ‘나를 따르라.’는 말이 함의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본문 16쪽)


2.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로 번역된 성서의 많은 문장들은 ‘예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다. 로마서 3장 22절에서 ‘디아 피스테오스 예수 크리스투’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이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가 아니다. 성서학자들은 목적의 의미가 있는 목적속격이라는 문법을 만들어 소유격을 목적어로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를 펼치지만, 그것은 참뜻을 곡해하는 주장이다. 명백한 오역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본문 24쪽)


3. 기독교는 이 점에서 예수가 말하고 있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가 부정하고 또 부정한 그 겉의 예수를 믿는 종교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예수는 다른 예수가 되었다. 예수가 말하고 있는 그 ‘예수’, 그 ‘나’는 거세되어버린 채, 다른 예수, 육체대로의 예수만이 교회의 주인이 되어버렸다. 여기 비극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교회는 예수를 상실한 것이다. 열심히 예수를 믿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예수, 버러지 예수, 세상 임금 예수만을 고집하며 주인으로 모시고 있으니 그 예수는 공중에 매달아야 할 사탄이 되었다.(본문 43쪽)


4. 성경의 핵심사상은 ‘부활’이다. 종말론은 부활을 거세시킨다. 온통 부활이라는 말로 치장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는 성경의 핵심인 부활을 실종시킨다. 부활은 사망의 권세에 갇힌 무덤 속에 죽어 있는 ‘나사로’가 다시 사는 것이다. 선악의 무덤에 갇혀 있는 존재가 살아나는 것이 부활이다. 무덤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살아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덤문은 굳게 닫아놓은 채,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에서 부활을 거세시키고 있으니 종말론의 페스트가 얼마나 지독한 질병인지 알 수 있을까? 마르다 역시‘엔 테 에스카테 헤메라(마지막 날에)’라는 말은 사용하지만 잘못된 ‘종말론’에 감염되어 있는 대표적인 경우라 하겠다.(본문 62쪽)


5. 성서의 인간이해를 원죄론의 틀로 바라보는 관점은 성서의 본질과 터무니없이 다르다. 더구나 아담의 죄가 마치 유전되어 인류의 죄가 되었다는 것은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어서 내 이가 시다”는 유대 속담의 복사판이 아닌가. 아담의 죄가 유전되었다면 마땅히 예수의 의도 유전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담의 죄는 누구나에게 유전되어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하지만, 예수의 의는 유전되지 않는다. 오로지 예수를 믿는 사람만 의롭다함을 입는다고 ‘칭의론’은 말한다. 아담의 죄의 유전자적 DNA는 강력하고 예수의 의는 아담의 DNA보다 유전인자가 약하다는 말인가? 논리적으로도 궁색하다.(본문 69-70쪽)


6. 역사적 시간의 삶은 죽음을 향하여 있지만 존재적 시간은 ‘사랑과 거룩’을 궁극적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수많은 존재적 원형들이 있고 우리의 정신이 끊임없이 새로운 유형으로 이행하려는 것은 마침내 사랑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함이다. 정신은 사랑과 거룩을 지향한다. 영원한 아가페를 향하여 항해하는 다양한 형태의 시간 여행이다. (본문 95쪽)


7. 성경뿐만 아니라 우주 만물은 하나의 거대한 기호체계다. 서로 주고받는 사인이다. 그 기호는 관계성에서 형성된다. 기호는 어느 관점에서 읽느냐에 따라 주고받는 해석의 체계가 판이해 질 수 있다. 하나의 돌멩이를 해석하고 의미를 찾음에 있어서도 조각가의 그것과 건축가의 그것과 광물을 분석하는 연구원의 그것과 보석상인의 그것이 다르다. 서 있는 각자의 위치에 따라서 다른 것이다.(본문 103쪽)


8. 성경에는 이와 같은 예수의 화법이 종종 나타난다. 인생은 수가성 여인의 삶과 같다. 인생은 목마름이다. 인생은 갈증이다. 목마름은 인생의 실존이다.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인생들은 수많은 남편을 영접한다. 육신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물이 필요하듯 인생은 일생 동안 목마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처녀에게 자궁이 있듯, 우리의 마음에도 자궁이 있다. 정신의 세계에도 씨 뿌림을 받고, 씨가 발아하여 새로운 정신을 잉태하고 출산하여 새로운 나를 낳고 싶은 본능의 세계가 있다는 말이다. 어제의 나와 다른 오늘의 나를 낳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정신의 세계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와 깨달음을 찾아 씨를 받고자 하는 성적 욕망이 있다. 자신의 정신적 성감대를 자극하고 깨달음의 씨를 뿌려줄 남편을 찾아 헐떡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이 인생이다. 노자, 공자, 맹자, 붓다, 크리슈나무르티 … 등등.(본문 124쪽)


9. 빌라도가 법정에서 예수에게 묻는다. ‘진리가 무엇이냐’고. 진리의 물음은 그렇게 묻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법정에서 진술하듯 정의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진리에 대한 물음은 그렇게 경박하게 묻는 것이 아니다. 예수가 묵묵부답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빌라도의 마음의 태가 씨를 받아 수태를 준비하고 있기보다는 경도중의 여인과 같이 이미 피를 밖으로 흘리고 있는 것과 방불하기에 거기서 진리를 발설할 수가 없었다. 그곳은 진리의 씨가 흘러나올 곳이 아니다.(본문 136쪽)


10. 뱀의 형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으뜸되는 가치는 지식이다. 이 지식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이 지식의 나무를 통해 선악을 판단한다. 에덴에서 하와와 아담을 꾄 뱀은 그 같은 인간의 실상을 설명해 주는 성경의 논법이다. 따라서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라고 한다. 이때, 그것이 기록되는 종이는 기억력이라고 하는 인간의 기억 창고다. 이곳에 얼마나 많은 지식을 기록하느냐가 힘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이곳은 표면이다. 표면의 기록을 가치의 중심으로 삼는 존재의 세계가 곧 돌비의 세계다. 가이사의 것으로 존재하는, 가이사의 형상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은 바로 이곳에 값어치를 기록하고 자신의 값을 결정한다. 자신의 값어치를 높이기 위해 ‘수많은 깨달음과 지식’을 수집하려 한다. 정보만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아우성친다. 그 지식을 기반으로 타인과 관계하고 지배와 피지배를 형성하며 가이사의 질서를 이루어간다. (본문 154쪽)


1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일생동안 자신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려는 온갖 시도를 행한다. 그 시절이 아브라함 이전의 아브람 때이다. 아브람의 일생은 어떻게 인생과 하나님의 평행선이 계속되는가를 가르쳐준다. 마침내 하나님이 평행선을 깨고 하나님의 것을 취하는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이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뀐 때다. 아브람과 아브라함, 곧 두 이름을 통해 엿볼 수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방식. 소유의식에서 존재의식으로의 이행 방식. 평행선이 깨진다함은 하나님이 항복을 하던지 아브람이 항복하던지 둘 중 하나가 두 손을 들어야 한다. 아브람은 자신의 것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상징이요, 아브라함은 자신의 것을 내어던지고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의 상징이다.(본문 170쪽)


12. 처음 사람은 지식을 중심으로 심판의 칼을 휘두르는 게 특징이며, 그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간다. 단지파가 기둥으로 참여하는 이유다. 단 지파는‘심판’을 의미한다. 동시에 에브라임 지파의 상징성은‘수고한 땅에서 창성케 한다.’는 에브라임의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지상가치가 소유에 있고 번성에 있다. 지식은 심판을 낳고 힘을 배양해서 궁극적으로‘번성’에 방점을 찍는다. 마음은 그렇게 형성되고 구조화된다. (본문 231쪽)


13. 아브람과 아브라함이 두 종류의 남신이라면 하갈과 사라는 두 종류의 여신이다. 아브람과 아브라함은 두 종류의 로고스라면 하갈과 사라는 두 종류의 태요, 두 종류의 예루살렘이다. (본문 277쪽)


14. 바울은 말한다. 창세전에 모태로부터 구분되었노라고. 새 언약의 성취는 아비의 마음이 자녀에게로 향하고 자녀의 마음이 아비에게로 향하는 것에 있다. 이 둘은 사라의 태에서 태어남으로 가능하다. 새 언약의 성취는 하갈의 태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라의 태에서 시작되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이다. 이것은 씨뿌리기 전, 곧 창세전부터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창세전부터 진설되어 있는 떡 곧 진설병이다. (본문 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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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Part 1
1. 예수를 따른다는 것 15
2. 예수의 믿음과 예수를 믿는 믿음 21
3. 예수의 십자가 사건 29
4. 예수를 상실한 교회 36


Part 2
5. 창세기와 종말론 51
6. 선악과와 에스카토스(종말)에 대해 55
7. 속히 사라져야 할 신포도 속담 67
8. 역사적 시간과 존재적 시간 78


Part 3
9. 성경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101
10. 동정녀 탄생 이야기가 전해주는 것 118
11. 두 종류의 피 흘림 131


Part 4
12. 형상과 글 151
13. 십일조는 돈이 아니다 163
14. 청결한 마음 185
15. 한국교회와 제사 문제 204


Part 5
16. 히브리인들의 야웨 하나님 225
17. 땅의 빗장 안에서-요나의 표적 235
18. 고소와 충돌 250
19. 성서에서 말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273



본서 「예수의 믿음」 저자 김창호는 성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예수가 “나를 따르라”고 했을 때, ‘나’의 의미는 역사적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성전의 주인이신 산 예수인 ‘나’로 해석한다. 그러한 ‘나’의 의미는 다시 내 안에 있는 하나님으로서의 ‘나’로까지 확대된다.
저자의 성서에 대한 독특한 해석은 본문 전체에 번쩍인다. 전체 본문에 흐르는 일관된 맥락은 ‘예수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예수를 믿음의 대상으로 전락시키지 말고 예수의 믿음 안에서 혹은 예수의 믿음의 토대 위에서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헬라어에 대한 문법적 지식에 근거한 것으로 ‘예수를 믿는다.’는 대상화된 믿음에서 ‘예수의 믿음’을 본받아 지니라는 것으로 재해석된다. 이것은 예수를 대상화 시키는 ‘대자적’ 인식이 아니라, 보다 더 직접적인 ‘즉자적’ 깨달음의 인식이나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의 믿음과 나의 믿음을 일치시키는 ‘믿음에 대한’ 해석적 전환이다. 예수를 믿음으로써가 아니라, 예수의 믿음을 가짐으로써, ‘내’가 가야할 길이 곧 ‘하나님의 믿음의 길’이 된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이러한 새로운 해석은 누구나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예수를 믿는 믿음과 예수의 믿음을 구분함으로써 보다 더 주체적인 신앙의 길을 개척한다. 이 같은 저자의 성서 해석은 새롭고 분명하며 영적인 해석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새롭다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창세기와 종말론’과 같은 설명에서도 두드러진다. 특히 저자는 종말론을 “인간의 욕망이 창조해낸 기만”으로 보면서도 종말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데, 저자에게서 종말은 선악의 세계관이 끝나는 날이다. 그것은 ‘두 번째 사람으로 태어나는 때’이며, 크로노스의 시간에서 카이로스의 생명의 시간으로 변화되는 순간이라고 규정한다.
저자는 종말과 부활을 연결시켜 해석하는데,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이기는 자’ 또한 선악의 세계관을 넘어선 자를 뜻한다. 이러한 관점은 부활 사상과도 연결되는데 부활은 선악의 무덤 속에 갇혀 있는 존재가 살아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헬라어의 문법적 원문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새롭게 새겨 볼만한 흥미로운 관점이다. 전통적인 해석의 관점과 전혀 다른, 아주 새롭기도 하면서 어쩌면 혁명적인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저자는 문법적인 해석과 영적인 해석이라는 두 가지 틀을 가지고 성서를 해석한다. 본서는 저자가 오랜 세월동안 천착해온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성서 속의 다양하고 신비한 문제들을 재해석하고 있으며, 성서를 새롭게 이해하게 하는 안목을 제시해 준다. 종교의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이명권(비교종교학 박사, 코리안아쉬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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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호 소개

총신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철학교육을 전공하였다. 수도침례신학교와 중부대학에서 기독교철학과 헬라어, 히브리어를 강의한 바 있으며 저서로는 ‘베드로의 고백 그 허와실’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냐’ 등이 있다. 원어성서원 刊 스테판원어성경 데이터 작업과 편집에 참여하였으며 격월간지‘형상과 글’을 창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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