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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言)의 사원(寺) 역할을 수행해온 시(詩)

신학자로서 시와 문학을 탐독하고 예술의 세계에 침잠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에누리를 여유있게 묵상하는 일종의 메타 신학적 통로라고 나는 대강 믿는다. 그것은 하나님을 닫힌 교의적 체계에 가두지 않고 열린 자유 속에 풀어드리는 송축의 방식이자 인간으로서 바칠 수 있는 최대치 예의라고 나는 일관되게 생각한다. '하나님으로 하나님되게 하라'는 것이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기본 지향일진대, 그것은 상투적 고백과 선언적 명제 속에 저절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신앙 언어와 신학 담론을 자유스런 하나님의 숨결 속에 풀어놓으며 제 삶 속에 부단히 실천해나갈 때 도달할 수 있는 목표이다. 그 실천에 진정성을 부여하는 언어로 나는 말의 사원 역할을 수행해온 시(時)만한 것이 없다고 본다. 문학과 비평 쪽 모두 아마추어인 내가 굳이 이 책을 만들어보고자 용기를 낸 것도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다.

…

이 책의 배후와 글의 이면에는 내가 작품을 매개로 만난 이 땅의 시인들을 향한 빚이 적지 않다. 그 음침한 빚이 피차 간 보이지 않는 환한 공명의 빛으로 거듭나길 바라면서 그 작품을 빌려준 그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내 원고를 맡아 책의 꼴을 갖추어주신 이레서원 윤상문 편집국장님께도 물질자본의 부담을 넘어선 그 시인스런 은혜에 축복의 마음을 전한다. 내 숫기 없던 어린 시절부터 어설프게나마 시를 읽을 수 있도록 풋풋한 꿈과 싱싱한 환상을 공급해준 무명의 당신들께 이 책을 바친다.

-저자 서문 중에서

목차

저자 서문

제1부 초월과 방랑, 역사와 자연
방랑자의 고독에 깃드는 신성(백석)
순진한 무심함 또는 예수의 고향(김종삼)
눕고, 울고, 웃는 풀의 내력(김수영)
사람으로 공부하는 하느님(마종기)
'중심'의 괴로움과 '틈'의 구원(김지하)
목련, 또는 '돌아감'의 여정(김지하)

제2부 치열한 대결, 거룩한 세속
불멸에 이르는 불면(오규원, 남진우)
'하느님'을 꿈꾸는 말들의 풍경(김정란)
똥막대기 성자의 세계(최승호)
독신의 신학적 역설(이성복, 권혁진)
'미지'와 '흔적'으로서의 하나님(이성복)
진창이 된 몸/삶의 거룩함(황지우)

제3부 관조의 양상, 성찰의 초상
세 개의 바퀴(최승호, 류시화, 황동규)
'흔들림'과 '흔들리지 않음'의 언저리(고정희, 임동확)
시인 예수의 초상(정호승)
신학적 관조의 두 양상(고진하, 배문성)
바늘구멍 속의 일상(김기택)
어느 '동네' 목사의 쓸쓸한 초상(기형도)

제4부 사물의 즐거움, 생명의 아름다움
별의 시학, 별의 신학(윤동주에서 이성복까지)
나무를 만나는 세 가지 방식(나희덕)
거미로 읽는 시대와 인간(황인숙, 이문재, 박형준, 박성우)
가난과 적막, 그 신학적 미학(송찬호, 문태준, 박남준)
덧없는 생을 누리는 법(장석남) 

추천의 글

사과를 너무 짜면 나중에는 쓴맛이 나온다. 차정식 박사의 글은 신학자로의 여로에서 그렇게 단 맛을 한 올 한 올 뽑아내는 시심이다. 차디 찬, 단단한 껍데기를 만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신학의 지리멸렬한 글들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식상해 있다. 이 글은 분명 무엇인가 심장의 박동을 전하는 따스함을 독자들의 마음 깊은 곳으로 스미게 하는 힘이 있다. 본서는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은밀하게 독자들의 가슴에 심어가는 비밀함이 있다. 언어의 존재와 인격적 만남을 한층 상승시키는 저자의 격조 높은 필체에 깊은 숙연함이 있다.
│김성규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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