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터 기존 관념을 깬다!
여자가 직장생활한다 해서 남자가 되지 않듯
남자가 살림한다고 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한 수 못한 '것'으로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지배하고 여자는 당연히 남자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자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남자의 보호 의무라고 여겼습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조금 뛰어나다고 나서면 '꼴값을 한다'거나 '재수 없는 여자' 혹은 '제 본분을 망각한 여자'라고 깎아내렸습니다. 그것은 나만이 아닌 이 땅의 모든 남자들의 사고방식이었습니다.
이 사회가 남자들을 그렇게 자라게 만듭니다. 오직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권리를 누리게 하고, '오직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생을 올가미 속에 살게 합니다. 나도 이런 사회 구조 속에서 자라났고 그렇게 행동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런 '삐뚤어진 사고'에서 벗어났습니다. 그것은 내게 억지로 지워진 상황에서 아내 대신 살림을 하게 된 지난 4년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니 참으로 긴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보다 훨씬 긴 날이었습니다. 그 동안 많은 좌절과 절망을 겪으며 여기까지 오고나서 돌아보니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남들의 눈에는 '남자가 채신머리없게' '남자가 어떻게' 하는 조롱과 깍아내림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내게는 아주 소중한 날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와 우리 가족에게 행복한 길임을 나는 믿습니다.
여자는 남자가 지배해야 할 대상도 보호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 함께 나누어 짐을 지고 가야 하는 나의 반쪽입니다. 없으면 온전치 못한 삶을 사는 것이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여자를 나누기에 앞서서 '인간'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남편과 아내를 나누기에 앞서서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변화하는 속도를 측정할 수 없는 21세기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오직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여성들이 아픔을 간직한 채 살고 있습니다. 특히 가정에서 남편들은 폭력과 억압으로 많은 주부들을 눈물짓게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이 글은 나의 자랑이 아니라 내 치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또한 남자들의 치부이기도 하며 여성들의 눈물과 애환이기도 합니다. 내가 부끄러움을 벗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이 글이 남자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을, 여성들에게는 위로가 되길 바라는 작은 마음에서입니다.

- 2000년 11월 차영희

● 본문 98-99쪽 「인생은 용기 없이 아무 것도 가져다 주지 않는다」중에서

그랬다. 아내는 대충대충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말은 시험이나 한 번 볼까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어느 정도 자신이 있으니까 말을 꺼낸 것이라는 것을. 그런데 아내가 합격을 했다는데 왜 이렇게 마음 한 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지 모르겠다. 물론 축하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밴댕이 속이 아니니까.

"그럼 언제부터 일을 하는데?" "일은 내일부터 하라는데… 그만 둘까봐. 아침 9시에 나가면 저녁 10시나 다 돼서 올 텐데… 당신이 너무 힘들잖아?"
"나는 괜찮아, 하고 싶으면 해봐, 집안일 할 게 뭐 있어?" "그럼 한 달만 해보고 정 안 되면 그만 둘게." 그래서 아내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참 궁금한 것은 어째서 아내가 갑자기 마음이 변했나 하는 것이다.

"사실은 모집 공고를 보고 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거든. 새롭게 일을 시작하면 어쩌면 월급을 한 푼도 못 가져올 수도 있거든… 그래서 고민하다가 화장실에서 결정을 하게 됐어."
그러니까 화장실에 누군가 낙서처럼 휘갈겨 놓은 것을 보고 아내는 마음의 결정을 한 것이다. 그래서 회사 이름도 그렇게 지었던 것이고. 인생은 용기 없이 아무 것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지금 내 자신이 참으로 초라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비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제 막 손에 익은 살림을 즐기면서 평안함에 안주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나를 돌아보거나 채찍질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내 안에 나를 살찌우는 데 게으름을 피우고 마냥 평안함을 즐기고 있었으니까.

아내는 요즘 정신이 없다. 새로운 업무를 익히느라고 다리에서 바람소리가 나는 듯 하다. 기를 쓰고 안 배우겠다고 버티던 컴퓨터도 배우기 시작을 했고… 시도 때도 없이 아내를 찾는 전화가 울려댄다. 그러나 난 한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