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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 현역이 어찌 꿈이랴 (94세 닥터 한의 일과 삶)

저자 : 한원주  | 라온누리 | 2019-09-30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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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ISBN 9788986767483
쪽수 312
크기 152*225

이 책이 속한 분야



KBS 인간극장, 다큐공감의 주인공!


100세를 바라보며 봉사하는 최고령 현역 의사 한원주의 아름다운 동행 이야기
 실버세대를 향한 희망 메시지


  100여 년 전 구한말(舊韓末) 암흑기에 할머니가 예수를 믿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 가문에 빛이 비추기 시작하였다. 지혜와 지식을 중요시하는 기독교가 열심히 신앙 안에서 자손들을 교육시키게 해주었다. 일찍이 교육을 받았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3·1 대한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해 옥고를 치르는 가시밭길을 걸어오는 과정에서도 우리 여섯 자매를 교육시켜 주셨다.


  두 분은 우리 자매들에게 나눔과 봉사의 기쁨도 몸소 알게 해주셨다. 의사인 아버지가 의료봉사하시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기에 그 뜻에 순종하며 의료봉사의 기쁨을 누리며 걸어왔다. 의료봉사는 나에게 큰 보람과 기쁨을 안겨주었고, 이 나이에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된다.


  주 5일간의 병원 생활에서 벗어나 집에 오가는 것도 재미있고, 주말마다 자식들을 만나는 것도 즐겁다. 주말에 동창들, 친구들 또 기독여의사회 벗들과 만나는 것도 마음 설레는 일이다. 구순을 넘은 지금까지 직장에서 일하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 본문 중에서


책 속으로


[머리말]
내 삶의 토막 일기

이삼십 년 전부터 시간 나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보고 듣고 겪었던 바를 몇 자씩 적어보았습니다. 내 나이 구십이 되어 이 세상을 하직하기에 앞서 글을 한데 모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역사학도가 아닙니다만, 여자를 멸시하고 천대하던 시절에 개화된 서민 집안의 딸로 태어나 고등교육까지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큰 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 글은 보통 사람의 일기장 같은 거라고 봐주시면 되겠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궁핍한 조선 사람으로 생애를 시작했던 나는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6·25 전쟁을 다 겪었습니다. 완전히 잿더미가 된 이 강산에서 안간힘을 다하여 어려움을 이겨내왔고, 그간의 생활상을 우리 후손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다만 일찍이 개화되어 이조 말부터 서양문화를 받아들인 부모님이 의사가 되고 교사가 되어 우리들을 가르치시고 봉사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교육만이 이 나라가 다시 일어나 살 길이라고 우리를 격려해 주셨고, 의술을 통하여 모두에게 봉사해야 함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나 자신도 의료봉사의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여의사로서,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가정을 돌보는 주부이자 사회인으로서 일인 다역으로 바쁘게 살아오고 보니 그동안 많은 실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글은 내 삶의 토막 일기에 가깝습니다. 누구에게 읽어 주십사고 적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복해서 기술된 곳도 많고, 등장하는 인물들이 본명으로 되어 있는 곳도 있습니다. 살아계시는 분들은 가급적 양해를 구하였지만, 이미 작고하신 분들에게는 지면을 통해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 글을 책으로 엮기에 앞서 사랑하는 아들의 권면(勸勉)과 또 도움 주신 여러 사람들 그리고 사랑하는 둘째 딸 명화와 외손주 준환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본문 펼쳐보기-1]
어느 여의사의 삶

사람은 누구나 날 때부터 늙어 죽을 때를 향하여 순례의 길을 걸어가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어려운 일도 있고 기쁜 일도 있고 또 슬픈 일도 당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한 고비들을 어떻게 잘 견디고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아름답다든지 실패했다든지 하는 평가를 받게 된다.
아득한 지난날을 회상해보면, 힘겹고 슬픈 일이나 즐거운 일들은 아련한 안개 속에 사라지고 그리움만 남게 된다. 이럴 때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 자신이 얼마나 후회 없는 만족스러운 삶을 기쁘게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분자(分子)와 세포로 구성된 물질에 지나지 않은 우리 육체는 혼과 영이 융합되어 인간을 구성한다. 희로애락(喜怒哀樂), 사랑, 충성, 믿음과 선악을 판단하는 마음, 탐구하는 마음 등을 오로지 인간의 전유물(專有物)로 주신 창조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나의 삶을 돌이켜볼 때 남편이 하늘나라로 떠났을 때를 빼고는 만족스럽고 기쁜 일생이었다.
첫 번째로 100여 년 전 구한말(舊韓末) 암흑기에 할머니가 예수를 믿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 가문에 빛이 비추기 시작하였다. 지혜와 지식을 중요시하는 기독교가 신앙 안에서 자손들을 열심히 교육시키게 해주었다. 그러므로 집안의 개화가 속히 이루어지고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는 위치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일찍이 교육을 받았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3·1 대한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해 옥고를 치르는 가시밭길을 걸어오는 과정에서도 우리 여섯 자매를 교육시켜 주셨다. 비록 큰 부귀영화는 누리지 못하였지만 사람으로서 품위를 갖출 수 있게 키워주셨던 것이다.
두 번째로 부모님이 우리를 성장기 동안 믿음 안에서 양육하고 나아가 고등교육도 받게 해주심으로써 순종하며 부모님 뜻을 따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두 분은 우리 자매들에게 나눔과 봉사의 기쁨도 몸소 알게 해주셨다. 비록 의사의 길을 선택한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지만, 의사인 아버지가 의료봉사하시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기에 그 뜻에 순종하며 의료봉사의 기쁨을 누리며 걸어왔다. 이런 나의 길이 만족스럽다. 나는 다시 태어나더라도 이 길을 택할 것이다.
내 나이 94세를 맞이하여 젊은 날의 허다한 일들은 덮어두고 나의 인생을 돌아보며 나의 황혼의 생이 얼마나 즐겁고 기쁜 나날이었나를 회상해보고자 한다. 의료봉사는 나에게 큰 보람과 기쁨을 안겨주었고, 이 나이에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된다.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예과를 수료하고 본과에 올라간 여름방학에 8·15 광복을 맞이하였다. 세상은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좌우충돌과 신탁통치 반대운동 등으로 학교 수업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할 때였다. 독서를 즐기던 나는 가끔 일본 교토 동지사(同志社)대학 철학과를 다니다 귀국한 친척 오빠 집에 놀러 가 그의 철학 이야기를 즐겨 듣곤 하였다. 때마침 놀러 왔던 사람이 일본 교토부립(京都府立) 의과대학 본과에 다니던 오빠 친구였다. 그도 역시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이야기가 잘 통하니 절로 친해졌다.
이윽고 그의 학문에 대한 순수한 마음과 예리한 통찰력에 마음이 끌려 사랑하게 되었고, 그러는 사이에 그는 의학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서울대 물리학과로 전과를 했다. 그는 멋진 청년이었다. 언니들이 ‘원주도 연애할 줄 아는가 봐.’하며 놀라워했다. 집안에서 고지식하고 소심하기로 정평이 난 나였으니, 그럴 법도 했다. 우리는 만난 지 3년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6·25 전쟁이 끝난 후 사회가 미처 정비되기도 전의 일인데, 이승만 대통령이 만성적인 전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원자력 개발에 발 벗고 나섰다. 1956년 서둘러 한미원자력협정을 체결한 데 이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1959년에는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초대 소장으로 임명된 사람은 한국물리학회 부회장이자 문교부 기술교육국장이던 박철재 (1905~1970) 박사였다.
그런데 원자력 불모지인 한국에서 원자력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이를 담당할 인재 양성이 먼저였다. 그랬기에 정부는 전후의 취약한 재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젊은 물리학도를 선별해 미국과 영국으로 국비 연수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이때 1차로 파견된 사람이 바로 윤세원 씨와 내 남편이었다. 1956년 4월의 일로, 두 사람은 미국 일리노이주에 있는 아르곤 국립원자력 연구소(Argon National Laboratory) 부설 국제원자력학교(School of Nuclear Science and Engineering)에 파견되어 연수를 받았다. 1년여의 연수가 끝난 후 두 분은 귀국하여 윤 교수는 문교부 박철재 국장 밑에서 초대 원자력 과장을 맡아 원자력 개발에 필요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역할을 맡았고, 남편은 미국에 다시 돌아가 시카고대학 물리학과 연구실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시카고대학 물리학과 연구실에서 공부를 하던 남편이 1959년에 나의 미국행을 주선했다. 당시에는 부부가 함께 외국에 나가는 것을 막는 제도가 존재했기에 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나의 미국행은 성사되었다. 국내에 달러가 귀한 시절이라, 여행자가 소지할 수 있는 금액은 단돈 100달러에 불과했다. 고지식하기 짝이 없던 촌 아줌마는 달랑 100달러만 손에 쥐고 수만 리 길을 떠났다. 그때 일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모험이었다.
한국에서는 산부인과 전문의 자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새로 과정을 밟아야 했다. 나는 시카고병원에서 인턴에서부터 출발했다. 때마침 외국인을 위한 ECFMG(Education Commission for Foreign Medical Graduates) 미국 의사시험제도가 공포되어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내과부터 공부하는 것이 순서인데, 공부할수록 내과가 재미있었다. 결국 레지던트는 내과를 선택하여 내 전공을 바꾸고 말았다. 이어서 메릴랜드병원에서 내과 치프 레지던트까지 마치고 미국 원호병원에 취직했다.
나는 미국에 영주할 작정을 했으나, 일이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남편이 먼저 귀국하게 되면서, 몇 년을 미국에서 더 버티다가 결국 한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러한 과정을 겪은 까닭에 후일의 나의 의료봉사는 내과의로서 순풍에 돛 단 듯이 진행되었다. 왜 그때 내가 전공을 바꾸게 됐을까? 무슨 까닭으로? 지금 와서 생각하니, 오늘이 있기 위하여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일이 있다. 1968년 내가 미국에서 귀국했을 때의 기억이다. 남편이 손가락 끝에 작은 칩을 올려놓고 물었다.
“당신, 이게 뭔지 알아?”
“뭔데?”
“반도체라는 건데, 두고 봐. 장차 대단한 위력을 발휘할 거야.”
또 500원짜리만 한 얇은 검은색 원반을 보이면서 이런 말도 했다.
“이것이 장차 태양열 발전(發電)에 쓰이면서 대체에너지로 각광받을 거야.”
그리고 실리콘이 어쩌고저쩌고하는데도, 나는 뭔지도 모르고 “그래?”하고 대꾸할 뿐이었다. 50여 년 전의 우리 집 안방에서 주고받은 이야기이다. 그때는 국내에 반도체가 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과학기술 담당 비서관 오원철 씨에게 반도체 문제로 전화 대화를 시도했다가 묵살당한 일도 있었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1978년 그해 여름. 남편은 일본에서 개최된 태양열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하고 막 귀국하여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고 있었다.
“왜 그래요? 잠이 안 와요?”
“연구를 하기에는 조건이 너무 열악해. 가망이 없어. 보직이나 즐기며 앉아 있으라고?”
마침, 문리대 대학원 원장 발령이 나 있을 때였다. 그는 보직보다는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을 원했었다. 누구도 이해 못 했지만, 그를 잘 아는 나는 그를 이해한다. 비록 가정적이지는 못한 남편이었지만, 그는 열정적으로 ?



추천의 말 _ 감독기관도 혀를 찬 노의사의 열정
축하의 말 _ 개인사를 뛰어넘는 역사의 현장
머리말 _ 내 삶의 토막 일기

제 1 부 식민지 백성에서 6·25 피난민까지 

어느 여의사의 삶
새 생명이 태어나다
화전민의 후예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
무학농원
마산고등여학교 시절
우리가 겪은 6·25

제 2 부 미국에서 다시 출발한 의사의 길 
미국행
응급실
물에 중독된 여인
여성 운전자
어머니의 마음
군의관과 신생아
직접 진료의 중요성
참 잘했어요. 닥터 한
팔당호반
자가용 ‘포니’의 운전기사

제 3 부 전인치유에 앞장서다 

전인치유에 대한 의학적 접근
의료선교의원에서 찾은 마음의 평화
영혼과 사회의 병폐를 함께 치료
삼만 원의 기적 (전인치유의 시작)
절망에서 희망으로
어느 외판원의 사연
안타까운 이야기

제 4 부 백세 현역이 어찌 꿈이랴 

사랑하는 손녀 혜림아
가슴 설레는 의료봉사 (여름휴가)
지상의 천국 ‘지라도’
기독여자의사회 하기 진료 봉사
나보타스 의료봉사
건강하고 기쁘게 늙어가는 법
매그너스요양병원
미수 여행
기쁘게 살아온 한 여의사의 고백

제 5 부 3년, 그 후의 이야기 
들어가는 말 - 재판을 내면서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나의 나됨은 하나님의 은혜라
성천상 수상 소감
2018년 여성 독립운동가로 발굴되신 어머니
<매그너스재활요양병원>과 나
회진
꼬마 아가씨들의 희망
손자 준석이와 해외여행
나의 자식들

▶ 한원주 선생 연보
▶ 발문 _ 할머니 원장님




‘백세 현역이 어찌 꿈이랴’ - 94세 닥터 한의 일과 삶

3년 전, 벚꽃이 흩날리는 계절, 구십이 넘는 인생을 돌아보며
‘백세 현역이 어찌 꿈이랴’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출간한 한 여의사가 있다.
100세를 바라보며 봉사하는 최고령 현역 의사 한원주의 아름다운 동행 이야기,
실버세대를 향한 희망 메시지가 여기에 담겨져 있다.
그녀의 놀라운 히스토리는 KBS 다큐 공감, 인간극장, 극동방송, CTS 기독교방송 등
각종 언론매체에 소개되어 많은 이들의 롤 모델이 되었고, 깊은 감명과 큰 도전을 주었다.

2016년 초판으로 발행된 회고록이 출판사의 사정으로 절판되어 ‘라온누리’(건강과 생명)에서 2019년 가을, 재간(再刊)하게 되었다.

매그너스재활요양병원 한원주 내과 과장은 환자들에게 ‘엄마’라 불리기도 하는 멘토 같은 분으로서, 현재 몸담고 있는 매그너스요양병원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귀감이 되어 존경받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제 강점기부터 오늘날까지, 시대의 격랑을 헤치면서 의사로 살아온 자신의 구십이 넘는 평생을 반추했다.

한원주 선생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경남 진주에서 항일지사이자 기독교 신자인 부모님의 6녀 가운데 셋째 딸로 태어났다. 3·1 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뒤늦게 의학을 공부한 아버지와 가족을 따라 유년기에 마산으로 이사해 그 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1944년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고려의대 전신)에 입학한 그는 광복 후 모교 병원에서 봉직하던 중 한국전쟁 6개월을 앞두고 물리학자인 남편과 결혼했다.
산부인과 전문의이던 그는 휴전 이후 서울에서 산부인과의원을 개원했다가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남편의 권유로 1959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의사 자격을 취득했다. 현지에서는 내과 인턴·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미국 원호병원에서 내과전문의로 일하다 귀국해 서울에서 10년 넘게 개인 의원을 운영했다. 여기까지는 개화한 유복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고 초창기 여의사의 길을 걸으면서 평탄한 인생행로를 겪은 셈이었다.
그러나, 1978년 물리학자이던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 인생행로에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저자는 이때부터 의료봉사의 행로에 들어선다. 이듬해부터 무료진료와 전인치유를 목적으로 설립된 한국기독교의료선교협회 부설 의료선교의원장으로 20년간 헌신하는 등 근 40년간 의료봉사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해마다 휴가기간에는 해외 의료봉사활동도 이어갔다.
그 공로가 뒤늦게 알려져2017년도에 의료봉사활동의 귀감이 되는 의료인에게 주는 ‘제5회 JW 성천상’ 수상자가 됐다.
저자는 2008년부터 지금까지 경기도 남양주의 매그너스재활요양병원 내과 과장을 맡아 열정적으로 진료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궁핍한 조선 사람으로 생애를 시작했던 나는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6·25전쟁을 다 겪었습니다. 완전히 잿더미가 된 이 강산에서 안간힘을 다하여 어려움을 이겨내 왔고, 그간의 생활상을 우리 후손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다만 일찍이 개화되어 이조 말부터 서양문화를 받아들인 부모님이 의사가 되고 교사가 되어 우리들을 교육시키시고 봉사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교육만이 이 나라가 다시 일어나 살 길이라고 우리를 격려해주셨고, 의술을 통하여 모두에게 봉사해야 함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나 자신도 의료봉사의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왔습니다.’

저자의 말 속에 삶의 여정이 오롯이 녹아져 있다.

모두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 - 식민지 백성에서 6·25 피난민까지 / 2부 - 미국에서 다시 출발한 의사의 길 / 3부 - 전인치유에 앞장서다 / 4부 - 백세 현역이 어찌 꿈이랴/ 5부 - 3년, 그 후의 이야기 등을 중심으로 저자의 일생을 옮겨 놓았다.

< 추천의 말>

감독기관도 혀를 찬 노의사의 열정 
손의섭 _ 의료법인 매그너스의료재단 이사장 


   하나님을 만나면 선각자가 되고 앞서가게 되며,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참 자녀로서 형통한 은혜를 누리는 축복을 얻습니다.
  구한말 아무도 예수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시절, 한원주 선생의할머님께서 일찍이 예수를 영접하시고 선각자가 되셨기에, 가족이 구원받고 자손들이 대대로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여 형통해 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분이 의료봉사병원인 우리들의원 원장으로 근무하실 때 처음 뵌 후부터 지금까지 우리 매그너스재활요양병원에서 근무하시는 그분의 삶을 지켜보는 입장에서, 역시 남다른 분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자를 주저 없이 권하는 영광을 갖게 되어 존경하는 마음과 기쁨으로 본 책자의 추천글을 쓰고 있습니다.
  믿음을 바탕으로 아직도 젊은이들과의 직장 센서스그룹 미팅에서도 그분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입을 벌리며 놀라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십니다. 우리 매그너스재활요양병원 내과 과장으로서 94세의 나이를 모를 정도의 열정으로 많은 환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경륜과 사랑이 넘치는 의술을 펼치심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희 병원에서 당뇨 치료를 받은 환자가 한원주 과장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무를 기증해 병원 공원에서 기념식수를 하기도 했고, 노인환자들의 존경을 받으며 청록회원들을 정기적으로 격려하고 이끌어나가고 계십니다.
  병원을 현장 방문하여 의료청구금액을 실사하고 감독하는 심사평가원 관계자가 80세 이상 노령 의사가 과연 제대로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겠느냐며 실제로 병원을 방문하여 조사한 일이 있습니다. MRI(전자의료차트)를 능숙하게 다루고 영어 스피킹도 유창하며 소그룹 환자 교육 현장에서 훌륭한 강의를 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지켜본 관계자가 혀를 차고 돌아간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밝은 얼굴로 입원실을 라운딩하며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은 경탄을 금하지 못합니다.
  ‘백세 현역’이 어찌 꿈이겠습니까?
  적극적인 일독을 추천하며 100세 현역, 그 꿈을 달성하시기를 권합니다.

< 축하의 말>

개인사를 뛰어넘는 역사의 현장 
김 윤 _ 매그너스재활요양병원 대표원장

   내가 한원주 선생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의료선교협회에서 운영하던 소규모 임상 클리닉에 닥터 한원주라는 분이 봉사자의 개념으로 근무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처음 접한 소식이었다. 그때는 ‘훌륭한 분이 계시는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쳤다.
  그러다가 얼굴을 처음 뵌 것은 의료선교협회 모임에서였다. 먼발치에서 자그마한 체구의 조용한 성품의 의사분이 한원주 선생님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후에도 의료선교협회 모임에서 가끔 지나치기는 했지만, 직접 인사드린 적은 없었다. 다시 그분과 해후하게 된 것은 나이 들어 요양병원에서였다. 20년 이상 운영하던 외과병원을 접고 매그너스재활요양병원에 근무하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한원주 선생님을 대면하게 되었다.
  직접 뵙게 되니, 자연히 대화를 나눌 시간이 많아지면서 선생님이 겪어온 개인적인 생활환경에 대해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선생님의 지난 일생은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었고, 정말로 훌륭하신 부모님 슬하에서 성장해오셨음을 알 수 있었다. 가장 어렵고 암울했던 일제 치하에서 태어나 오늘날까지 살아오신 여정은 한 개인의 평범한 삶을 뛰어넘는 우리 역사의 생생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내게 들려주신 이야기를 그냥 흘려버리지 마시고 글로 써서 남기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린 것도 이런 이유였다. 때마침 선생님이 지나온 이야기를 정리한 메모 기록을 가지고 계신다고 해서, 건강이 허락하는 동안에 그 기록들을 정리해 책으로 남기시기를 거듭 권했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이 자서전을 내실 준비를 하고 계시다는 말씀을 듣고는 너무 반가웠다. 구십대에 들어선 선생님은 비록 육체적으로는 젊은이들처럼 활동하지 못하시지만, 정신적으로는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책임감과 비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계신다.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선생님이 정리하고 계신 원고를 제대로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분의 역정(歷程)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를 직접 들은 바 있다. 비록 선생님의 옥고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지만, 선생님의 노익장에 대해 축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예의라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동안 선생님으로부터 지금까지의 인생 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생생한 과거의 현장에 가 있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 이야기는 단순히 한 개인의 사생활이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를 풍부하게 채워줄 조각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항일지사이자 독지가이셨던 부모님의 영향 아래 평생을 검소하게 살면서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헌신해온 과정, 그리고 이런 삶의 바탕이 되는 신앙인으로서의 모습이 서술된 생생한 기록에 대한 기대가 자못 크다.
  아울러 구순에 접어든 지금도 선배 의사이자 신앙의 선배로서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선생님의 남은 시간들을 주님께서 지켜주시고 동행하여 주시는 행복한 삶이 되시기를 기도한다. 삶의 기록을 남기시길 권했던 당사자의 입장에서 진심으로 자서전의 출간을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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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주 소개

일제 치하인 1926년 경남 진주에서 항일지사이자 기독교도인 부모님의 6녀 가운데 3녀로 태어났다. 3·1 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뒤늦게 의학을 공부한 아버지와 가족을 따라 유년기에 마산으로 이사해 의신유치원, 성호소학교와 마산고등학교와 마산고등여학교(5년제)를 졸업했다. 해방 전 해에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에 입학해 해방 후 졸업하고 모교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던 중, 한국전쟁 발발 6개월을 앞두고 물리학자인 남편과 결혼했다.

휴전 이후 서울에서 산부인과 병원을 개업했다가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남편의 권유로 1959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의사 자격을 취득했다. 미국 현지에서 내과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새로 밟고 미국 원호병원에서 전문의로 일하다 귀국해, 서울에서 10년 넘게 개인의원을 운영했다.

1978년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이 글쓴이를 의료봉사의 길로 인도했다. 이듬해부터 주 1회씩 무료진료에 나섰고, 1988년에는 운영하던 개인병원을 폐업하고 무료진료와 전인치료를 목적으로 설립된 한국기독교의료선교협회 부설 의료선교의원(개명 후 나중에 ‘우리들의원’)을 개원하였다. 그곳에서 원장으로 봉직하며 20년간 무료 의료 봉사에 매진했다. 뿐만 아니라 이때부터 해마다 휴가기간에 노구를 이끌고 해외 의료봉사를 다녀오고 있다. 2008년부터 구십이 넘은 지금까지는 남양주의 매그너스재활요양병원 내과 과장을 맡아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7년에는 38년간 도시영세민과 노숙자 등 소외계층 환자들을 위해 의료봉사에 헌신해온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중외학술복지재단이 수여하는 제5회 성천상을 수상했고, 2017년에는 KBS ‘다큐 공감’ <큰 숲을 이루다, 의사 한원주>편에, 2018년에는 KBS ‘인간극장’ <93세 닥터 한과 인생 병동> 편에 출연하였다. 또한 FEBC 극동방송 <아흔 세 번째 봄길-93세 현역의사 한원주> 편과 CTS 기독교방송 ‘내가 매일 기쁘게’ <백세를 바라보며 봉사하는 의사, 한원주> 편 등에 출연하여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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