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톨릭교회의 참회고백, 무엇을 말하는가?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황이 "기억과 화해: 교회의 과거의 과오들"(Memory and Reconciliation: The Church and the Faults of the Past)라는 제목의 참회고백문을 통해 참회고백을 한 것은, 과거사를 양심적으로 참회하고, 새 천년기를 양심의 교사다운 권위를 가지고 재출범하기 위한 교회의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티칸, 불란서, 일본의 가톨릭교회의 참회고백을 중심으로 양심선언과 역사의식의 관계와 중요성을 살펴보며 한국천주교회의 우상숭배, 민족배신, 친일행각 그리고 광복 후의 비뚤어진 역사인식을 소개한다. 본서는 한국천주교와 개신교의 참회고백과 양심선언을 촉구한다.

머리말
차례

제1부 로마가톨릭교회(바티칸)의 양심선언
1. 2천년 동안 저지른 과오들을 참회하나이다
2. 회상과 화해: 교회의 과거의 범죄
3. 기억의 정화, 왜 필요한가?

제2부 불란서가톨릭교회와 일본가톨릭교회의 양심선언
4. 침묵의 죄를 참회하나이다(불란서가톨릭교회)
5. 전쟁협조의 죄를 참회하나이다(일본가톨릭교회)

제3부 한국천주교회는 양심선언을 할 것인가?
6. 한국천주교회의 우상숭배와 민족배신
7. 한국천주교회의 친일행각
8. 성직자들의 역사의식
9. 크리스쳔들의 장단맞추기

제4부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10. 문화적응주의인가, 타협주의인가?
11. 한국기독교의 백귀난행
12. 양심선언과 역사의식, 왜 중요한가?

참고문헌

부록
1. 기억화 화해: 교회의 과거의 범죄(로마가톨릭교회)
2. 제2차 세계대전과 유태인에 대한 참회선언(불란서가톨릭교회)
3. 평화를 위한 결의: 전후 50년에 즈음하여(일본가톨릭교회)
4.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전후 50년을 맞이하여(일본가톨릭정의·평화협의회)

■ 머리말 중에서

로마카톨릭교회(바티칸)는 2000년 3월 5일에 지난 두 천년기 동안에 교회의 자녀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 참회고백을 했다. 불행한 역사를 과감히 단절하고 새 천년기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도였다. 그리고 3월 12일에 베드로교회당에서 세계 여러 곳에서 모인 1만여 성직자들과 더불어 "용서의 날 미사"를 가졌다. 십자군 전쟁, 종교재판, 마녀사냥. 반유대주의, 원주민 학살 방조, 여성에 대한 억압, 인종차별 등 교회가 범한 여러 가지 잘못들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죄 없는 사람들을 무수히 학살하고 십자가를 내세워 정복주의적 야욕을 채우고 또 성경적 진리를 신봉하는 개신교도들을 수없이 죽이고 박해한 로마 카톨릭교회의 과거사가 어찌 참회고백 문서 하나로 해결될 수 있겠는가. 끔찍한 죄악의 역사를 어떻게 다 열거할 수 있으랴. 그러나 공개적인 참회고백은 불행한 역사를 단절하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불란서가톨릭교회는 1997년에 유태인들에 대한 진지한 참회고백을 했다. 나치 정부가 불란서 영토에서 유태인을 학살할 때 교회가 그것을 방조하고 침묵한 죄를 공개적으로 참회했다. 일본가톨릭교회도 1995년에 교회가 일제의 천황제 국가주의 체제와 이데올로기에 동조하여 전쟁에 협조한 죄를 참회했다. 일본가톨릭교회 사제단과 일본가톨릭정의ㆍ평화협의회가 각각 참회고백 문서를 발표했다.

바티칸, 불란서, 일본의 가톨릭교회의 참회고백은 다분히 정치적, 적응주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기독교의 본질에 부합하는 일이다. 역사의식을 가진 솔직한 양심선언이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잘못을 참회하는 일은 언제나 용기있고 충성스런 일이며, 영적 도덕적 권위를 회복하는 일이다. 억눌려온 신앙공동체의 양심을 자유케 하고, 더러운 윗물을 차단하고 맑고 신선한 생수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일이다.

한국천주교회는 어떠한가? 일제시대의 한국천주교는 우상숭배 집단으로, 반민족단체로 존재했다. 주교 뮈텔(한국명 민덕효)은 신도들을 일제에 밀고할 정도로 친일행각을 일삼았다. 밀고의 대가로 명동성당 앞 진고개 도로를 개통하기까지 했다. 주교의 친일행각은 곧 한국천주교회의 친일, 반민족행각이다. 그런데도 한국천주교회는 지금까지 그 사건에 대해 공적인 참회고백을 하지 않았다. 한국 감리교의 친일과 야합의 대명사인 정춘수 감독의 "개종"을 받아주는 이른바 귀정식은 떠들썩하게 거행하면서도 자신의 범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한국천주교회의 사제들 가운데는 극소수이지만 역사의식을 가지고 교회의 과오를 참회하자는 사람들이 있다. 병인양요(丙寅洋擾), 민족운동 금지, 신사참배 허용, 조상제사 금지 등에 대해 참회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계급 제도를 가진 한국천주교회는 과거사에 대해 웬일인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과거사를 참회하여 새로운 천년기를 성공적으로 시작하라고 권하고 있지만 한국천주교회는 묵묵부답이다.

한국천주교가 일제 말기에 수년간 저지른 우상숭배와 민족배신은 교황의 칙서에 따른 것이었다. 그 범죄는 한국천주교에 속한 "아들들과 딸들"이 저지른 것인 동시에 교회가 저지른 것이다. 더욱이 그것은 교황의 명에 따른 것이다. 로마가톨릭교회가 저지른 잘못이다. 그런데도 한국천주교회도, 바티칸 당국도 그것을 참회하지 않는다. 지난 두 천년기 동안에 저지른 죄악을 참회하는 참회 고백문서를 발표하면서도 우상숭배에 대해서는 참회하지 않았다. 이 땅의 신자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더불어 이방 신들을 섬긴 죄, 그렇게하도록 한 죄, 민족을 배신하게 한 죄는 고백하지 않았다.

한국천주교회는 일제 말기까지 조상숭배 의식을 우상숭배라고 하여 금했다. 제사를 거부하여 많은 사람들이 순교했다. 그러나 신사참배 문제가 제기된 1930년대 말부터 조상제사를 수용하고 있다. 최근에 김수환 추기경이 어느 유생의 묘소에 6번 큰 절을 하고 예를 올렸다. 성경적 시각에서 보면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기본인 제1계명, 제2계명에 저촉되는 일이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조상숭배 조상제사 허용은 문화적응주의 정책과 종교다원주의라고 하는 혼합주의적이고 타협주의적인 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기독교(개신교)는 어떠한가? 한국교히는 신앙공동체의 성결성과 권위를 높이고 민족을 지도할 수 있는 양심의 교사의 자격을 갖추어야 할 세기적, 천년기적 관문에 서 있다. 그런데도 일제시대에 저지른 우상숭배, 백귀난행, 민족배신, 비인도적 행각을 포함한 과거사에 대해서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이 문제는 졸저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2000)과 『일본기독교의 양심선언』(2000)에서 상론하고 있다.

로마카톨릭교회(바티칸, 불란서, 일본)의 참회고백은 한국천주교회와 한국 개신교의 양심선언을 독려한다. 참회고백을 통해 양심적인 신앙공동체로 거듭날 것을 촉구한다. 개인이나 교회가 저지른 범죄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공적인 참회고백을 하지 않는 이상 그 책임이 사라지지 않으며, 참회고백에는 시효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한국교회가 일제치하에서 저지른 갖가지 죄를 참회하고 과거사 청산, 역사바로세우기, 양심회복을 하는 데 필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한국교회가 저지른 역사적 과오와 범죄를 어떤 관점에서, 왜 검토해야 하며, 또 어떻게 하는 것이 역사의식을 가진 양심적인 접근방법인가를 가르쳐 준다. 아울러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로마가톨릭교회의 변모하는 모습, 역사의식을 가진 진지한 태도, 교회의 신학과 방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우리는 바티칸, 불란서, 일본의 가톨릭교회가 발표한 참회고백을 분석하면서 한국천주교회의 드러난 친일행각, 민족배신, 우상숭배 행위를 일부 소개할 것이다. 교회의 어두운 과거사를 다루는 일은 자칫 폄화하고 단죄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학문적으로 과거사를 정리하고, 무엇을 어떻게 참회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인가를 파악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결코 특정인, 특정 종교, 특정 교파를 비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동일한 뿌리를 가진 한국천주교회와 한국 기독교가 민족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민족과 사회를 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 진리의 기둥과 터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한 일념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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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속으로

로마교 전통에 따르면 교황이 참회고백을 한 것은 그리스도가 세상을 향해 참회고백을 한 사건이다.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석고대죄를 한 것과 같다. 참회고백을 받기만 하던 자가 스스로 죄인이라고 선언하고 세상을 향해 "고백성사"를 한것이다.

교황청의 참회고백은 역사의식을 가진 자기 반성인 동시에 공존의 미래를 모색하자는 뜻으로 풀이된다. 종교다원주의 시대에 자신을 변화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주기도 한다.

참회고백문은 로마교가 강대국 주도의 세계 정치에 밀리고 약화되는 시점에서 발표되었다. 교황청의 권위를 되찾고, 이슬람 등 세계 주요 종교와 선의의 경쟁을 하며 주도권을 쥐려고 하는 뜻이 엿보인다. 유태인에 대한 참회에 역점을 둔 것은 정치, 경제를 비롯한 세계 주요 분야에서 중심 세력으로 부상한 유태인과 화해하지 않고는 정치적, 종교적 평화를 모색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식했기 때문인 것이다. 아메리카 신대륙의 학살 방조를 인간의 존엄성 무시라는 측면에서 접근한 것도 급변하는 세계 정세와 정서 그리고 정치적 변화를 감안한 것이다.

로마교의 참회고백은 그 밖에 몇 가지 신학적,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분열된 신앙공동체들이, 또 교회와 세상이 화해를 하자면 선결해야 할 기본조건들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첫째, 조상이 범한 죄에 대해 자손이 참회고백의 의무를 지니고 있다. 오늘의 로마교회가 저지르지 않은 유태인들에 대한 박해와 학살, 11세기의 십자군 운동의 잔학한 범죄, 13세기의 종교재판과 처형에 대해서도 용서를 구한 것은 어제와 오늘의 교회가 연대감과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둘째, 과거사는 1,2천년이 지나도 청산되지 않으며, 공적인 참회 고백이 없이는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교회의 죄는 참회시효가 없다. 구성원과 신념과 제도가 바뀌어도 공동체의 참회고백의 의무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 교회가 공적으로, 기구적으로 저지른 잘못은 대표성을 가진 합법적 기구에 의해 공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과거사는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에서 해결할 성질의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넷째, 교황은 "일부 형제 자배들이 저지른 배신 행위!"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교회의 아들들과 딸들이" 저지른 죄라는 것을 언급했는데 이것은 로마교권 일부에서 행해진 과거사도 교황과 로마교 전체에 그 책임이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다섯째, 교회는 무치(無恥)공동체가 아니다. 죄를 참회하고 고백하는 일은 기독교의 핵심적 메시지이다. 교회는 지금까지 참회고백을 받아오기만 했지 스스로 참회고백을 하지 않았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를 대표한다. 교회-그리스도가 범죄를 했으면 세상을 향해서도 참회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여섯째, 화해와 일치는 과거사를 고백하고 귀우치며 역사를 바로잡는 것에서 시작된다. 교회나 공동체의 분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된 까닭에 대한 명확한 역사청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마교의 참회고백은 종교다원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띄고 있다.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여 정치 권력을 확보하거나 대중적 인기를 얻으려고 하는 문화 적응주의(accomodationalism)의 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적응주의란 예컨대 동양 선교지에서 조상숭배와 제사를 우상숭배라고 하여 금하다가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서 그것을 수용했고, 일제 말기에 신사참배가 우상숭배라고 하여 금하다가 일제의 압력이 강해지자 교황이 교서를 내려 그것을 허용한 따위의 타협주의적 신념이다.

교황의 참회고백은 로마교에 대한 세계인들의 신뢰감을 심는 계기가 되었다. 점차 약화되고 있는 로마교의 권위를 회복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참회고백은 언제나 성스런 일이며, 기독교인은 항상 자기를 성찰하고 회개할 때 그 존재 가치가 발견된다. 참회고백은 각 나라 가톨릭교회와 신자들의 죄악과 과오들에 대한 책임감과 참회고백을 고조시키는 역할도 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

최덕성 소개

최덕성은 고신대학교, 미국 노스캐롤나이나대학교, 리폼드신학교(M.Div.; M.C.E.), 예일대학교(S.T.M.), 에모리대학교(Ph.D.)에서 수학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도 수학했으며, 하버드대학교의 객원교수(1997-1998)였다. 장로교 목사로 여러 해 담임목회를 하다가 1989년부터 고려신학대학원-고신대학교 역사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개혁주의 신학의 활력」「빛나는 논지 신나는 논문」「한국교회 친일파 전통」「일본 기독교의 양심선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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