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과 함께 읽는 존 번연의 역작

"나는 가끔씩 밧줄을 목에 두른 채 사다리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1660년대를 싸늘한 감방에 앉아 보내던 존 번연이, 자신은 교수형으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기억을 후에 다시 떠올리며 했던 말이다.
천로역정으로 대변되는 존 번연의 삶은 그의 작품에서 나타난 주인공처럼 기나긴 영적 전쟁의 삶이었다. 그는 지나치리만큼 치열하게 일어나는 내적인 영적 전쟁뿐만 아니라 복음 때문에 당해야 했던 수많은 고난과 박해를 승리로 견뎌 내며 천성문을 향해 산 순례자였던 것이다.
모든 성도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사탄과의 내면적인 영적 전쟁을 이처럼 진솔하게 표현할 수는 없으리라. 천로역정을 통해서 그의 삶을 우화적으로 그렸던 번역은, 이 책을 통하여 그 주인공인 자기 자신의 모습을 아주 솔직하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존 번연에 대하여
제 1장 나의 어린 시절
제 2장 신앙에 대해 눈뜨고
제 3장 혼의 첫 동요
제 4장 죄와 사탄에게 고통받고
제 5장 거세진 사탄의 공격들
제 6장 하나님의 은혜와 사탄의 분노
제 7장 마음과 정신의 고통
제 8장 은혜의 승리
제 9장 고통 가운데 피어나는 축복과 은혜
제 10장 설교자로 그리스도를 섬기며
제 11장 복음을 위한 죄수
결 론
번연의 후기

■ 본문 속으로
여러분, 즉 나의 독자들에게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친절하심이 훨씬 더 명료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의 성장 배경과 교육 환경을 시작으로 나를 어루만지셨던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길에 대한 이 이야기의 서두를 떼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나의 성장 배경에 대해 말하자면, 난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거라 믿지만, 변변찮은 혈통을 가진 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내 아버지의 친척들은 그것도 신분이냐고 할 정도로 사회에서도 가장 천대받는 축에 들었는데, 이런 연유로 해서 난 남들처럼 고상한 혈통이나 어떤 타고난 유력한 친척 관계를 가지고 어깨를 으쓱댈 만한 구석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다, 난 하늘과 땅의 하나님을 찬미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러한 방법들을 통해 나를 세상 속으로 데려 오셨고, 또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와 생명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해주셨기 때문이다. 양친의 천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나를 학교에 보내서 읽고 쓰는 법과 다른 아이들에게 뒤지지 않고 습득했던 그 기술들을 배우게 하기를 기뻐하셨다. 그러나 나에겐 낯 뜨겁지만 고백해야 할 게 하나 있는데, 난 내가 배운 그 조금밖에 안되는 것을 잠시만 지나면 거의 다 잊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것도 주께서 내 혼 안에 자비롭게 역사하셔서 나에게 진실한 회심이라는 복을 내려 주시기 한참 전에 말이다.
하나님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불신자였던 나의 삶은 진정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또 『지금은 불손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의로움이라곤 눈꼽만큼도 지니고 있지 않은 채, 난 『마귀의 뜻대로』그에게 사로잡혀 있기를 행복에 겨워했던 것이다. 한데, 이 녀석이 내 마음을 꽉 붙잡고서 나의 삶을 이리저리 흔들어대는 통에, 난 심지어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악담, 욕지거리, 거짓말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에 대한 모독을 입에다 밥풀처럼 붙이고 다녔던지라 그것에 관해 나를 따라올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사실, 나는 날이 갈수록 이러한 것들에 너무나 익숙해졌고 그것들은 나에게 있어 제2의 천성이 돼 버렸다. 나는 이것이 주를 너무나 불쾌하게 한지라 내가 어린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섬뜻한 꿈들로 나를 위협하여 깜짝깜짝 놀라게 하셨고, 또 무시무시한 환상들로 나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가셨다는 사실에, 부끄럽지만, 지금까지도 머리를 끄덕이고 있다. 왜냐하면 종종, 그러니까 여느 때나 다름없이, 그날도 죄 속에서 뒹굴다 돌아와 침대 위에 잠들어 있을 때면, 나는 나를 자기네들과 함께 저 멀리로 끌고 가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는 마귀들과 사악한 영들에 대한 생각들로 인해 엄청난 순면 방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때 난 결코 헤어나올 수 없었던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이 시기에 나는 자신도 결국에 가서는 지옥에서 심판 날까지 흑암의 사슬과 족쇄로 꽁꽁 묶여 있는 마귀들과 악령들 큼에 끼여 있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지옥의 끔찍스런 고문들을 생각하느라 마음이 심히 어수선했다. 단지 아홉이나 열 그 정도밖에 안 먹은 아이였는데도, 나는 이러한 것들로 인해 너무나 풀이 죽어 있었고, 세상 친구들과 뛰놀며 아이들 특유의 재미를 즐기는 중에도 영적으로 깊은 침체에 빠져 정신적 괴로움을 당하곤 했다. 그러나 난 그러면서도 손에 꼭 쥐고 있던 죄를 놓을 줄 몰라했다. 또한 생명과 천국에 대한 절망에 심하게 짓눌려 있던 나는 이따금씩 지옥이란 데가 아예 없든지, 아니면 차라리 내가 마귀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곤 했다. 마귀들은 오로지 고문하는 일만을 전담하는 걸로 생각하던 나는, 내가 만약 그곳에 가야만 한다면 고문을 당하는 것보단 다른 이들을 고문하는 일을 차라리 더 낫게 여겼던 것이다.

존 번연 (John Bunyan) 소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인쇄된 책이라는 《천로역정》을 비롯해 《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 《거룩한 전쟁》, 《악인 씨의 삶과 죽음》 등의 명저를 남겼다. 비록 학교에서의 배움은 짧았지만 존 번연은 풍자와 영웅 이야기, 유머, 영적 분야까지 거의 모든 장르를 빼어난 글솜씨로 다루었다. 무엇보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씨름에 공감을 보였고, 성경의 영적 원칙을 그들의 실질적인 삶과 연결시키는 재주가 탁월했다.
존 번연은 1628년 영국 베드포드(Bedford) 근처 엘스토(elstow)에서 떠돌이 땜장이이자 잡역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644년 이 시골 소년의 삶에 일련의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한 해에 어머니와 누이가 잇따라 세상을 떠났고, 뒤이어 아버지가 재혼했다. 같은 해, 열여섯 살의 번연은 의회군의 보병으로 입대하여 3년간 복무했다. 그가 배치된 지역은 거의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지만, 어느 날 한 젊은이가 그 대신 임무에 나갔다가 전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일을 두고 번연은 평생 하나님이 특별한 사명을 위해 자신을 살려 주셨다고 믿으며 살았다.
제대 후 그는 믿음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할 때 아내가 가져온 신앙 도서들을 접하며 그는 진정한 회심을 경험했다. 그러나 가난한 신혼살림, 시각장애를 안고 태어난 첫아이, 뒤이어 태어난 세 아이, 아내와의 사별, 재혼 등 혼란스러웠던 시대상만큼이나 그의 개인사도 녹록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영적 암흑기에 빠져들었으나 고통스러운 정련과 정화의 시간을 뚫고 나왔고, 마침내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로 세워졌다.
번연은 일평생을 내전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영국의 종교 지형도가 다시 그려지는 사회의 대격변 시기에 살았다. 1660년 영국의 찰스 2세는 비국교도들의 자유를 제한했지만, 번연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포기할 수 없어 12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출소한 번연은 베드포드의 목사가 되었으며, 이후에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꺼이 감옥에 갇히는 수고를 감당했다. 《천로역정》(1678)을 비롯해 많은 작품들은 그가 수감 생활을 하는 동안 탄생했다. 1688년 8월 31일 런던에 설교를 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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